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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13/07/14  
         name          이대
subject 완벽한 이상형의 증발

완벽한 이상형의 증발


내가 그 수첩을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10월 10일의 일이었다. 그 날 나는, 꿈속에서나 그려왔던 완벽한 이상형의 수첩과 만난 것이다.

*

그 수첩, 그러니까 얇은 초록색 고무 재질로 된 겉표지에 노란색 글자로 Untitled memo book이라 쓰여 있던 그 수첩을 만난 장소는, 당시만 해도 명동에 위치해 있던 코즈니 매장이었다. 학교 박물관에서 알게 된, 나보다 한 학번 위의 친구와 쇼핑 겸 해서 찾았던 명동 코즈니 매장에서 마주친 그 수첩은 첫 인상, 다시 말해 그 사이즈부터 내 마음을 휘어잡았다. 가로 10센티미터 남짓, 세로 16센티미터 몸집의 그 수첩은 가로 세로 사이즈도 사이즈지만 무엇보다도 검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그 두께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외면에 반해 가까이 다가가서 혹시나 내면은 어떨까 싶어 조심스레 그를 펼쳐 보았는데 이럴 수가, 그의 내면은 겉보다 더 완벽했다. 클래식한 표면으로 둘러싸인 모던한 내면. 그야말로 완벽한 이상형의 수첩이었다.
내면 묘사를 위해 이쯤에서 과거에 적었던 그에 대한 설명을 옮겨 보자면,

<다만 나는 항상 가지고 다니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손바닥 정도의 크기에, 일주일 정도면 읽을 수 있는 소설책 정도의 두께,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은 약 6밀리미터 정도의 줄 간격 쯤을 요구할 뿐이다. 물론 속지에 일러스트 같은 건 전혀 없어야 한다. 방해만 될 뿐이니까. 주별 월별 계획 페이지도 있어서는 안 되며 모눈종이 페이지 같은 것도 없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지 6밀리미터 줄 간격의 유선 노트로 성실하게 채워져 있으면 그만이다. 앗참, 그리고 앞 페이지와 뒤 페이지가 똑같이 쓰기 편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작은 사이즈의 수첩들은 구조상 뒤 페이지에 무언가를 적기가 상당히 불편한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야 뒤 페이지를 차별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 페이지 차별적인 수첩을 살 수는 없다.
난 단지 그런 정도의 단순한 수첩을 원할 뿐인데, 어째서 문구 회사들은 그런 수첩을 만들지 않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처럼 이해할 수 없는 문구 회사 세계에 대해 회의를 품고 지내던 2005년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들른 명동 아바타몰 지하의 코즈니에서 꿈에 그리던 몸과 마음에 쏙 드는 수첩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사이즈며 두께, 심지어는 줄 간격까지 내가 원하는 그대로였다. 속지에도 쓸데없는 일러스트 따위는 전혀 없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한 유선 노트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게다가 수첩의 정가운데가 활짝 펼쳐져, 뒤 페이지가 차별 받을 걱정 또한 전혀 없었다. 누군가 내 마음을 훔쳐보고 나를 위해 그런 맞춤 수첩을 만들어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하자면 그 수첩은 그 자체로, 내 수첩의 이데아(Idea)와도 같은 것이었다.>

소개팅에 나갔다가 은근한 첫인상에 반한 뒤 콩닥콩닥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어 보았는데 아니 이럴수가, 나랑 마음이 딱 맞는 상대방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내 완벽한 이상형과 말하자면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짧다고는 할 수 없을 연애를.

*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수첩은 세 권이다.
코즈니에서 샀던 첫 번째 수첩은 구입한 지 6개월 만인, 군대에 입대하기 직전 2006년 4월3일이 맨 마지막 페이지 기록 일자로 적혀 있다. 맨 앞장, 다시 말해 표지가 끼워져 있는 고무로 된 속지에는 두 가지가 끼워져 있는데 하나는 최지의 소개로 알게 된 대학로 초밥집 주수사(周壽司)의 약도로 추정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포스트잇이고, 또다른 하나는 2005년 12월 그즈음 내가 좋아하던 한 사람에게 썼던, 그러나 결국 건네지 못한 편지가 그 하나다. 수첩을 뒤집어 맨 뒷장의 같은 부분을 보았더니 거기엔 2006년 2월 3일에 발매된 공항리무진 티켓 영수증이 끼워져 있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고지은이 터키에 가던 날 바래다주던 기억의 유품인 듯 싶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을까 싶어 노란색 게시판 맨 처음 목록을 찾아보았는데 아쉽게도 2006년 2월 둘째 주 정리부터 남아 있어 찾아보지 못했다.
수첩의 페이지 안에는 대학 2학년 시기의 관심사와 추억들에 대한 내용이 충실하게 적혀 있다.

두 번째 수첩은 선물로 받은 거였는데, 2006년 초 역시나 박물관 아르바이트를 통해 친해졌던 또다른 친구에게서 받게 된 거였다. 내가 아마도 그 이상형의 수첩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했을 테고 고맙게도 그는 기억해 두었다가 내가 입대한 직후 고향 집 주소로 보내 주었던 모양이다.
그 수첩의 첫 페이지에는 선물해 준 그가 포스트잇에 적어 둔 메시지가 붙어 있으며, 그 바로 뒷장과 수첩 3분의 1, 3분의 2페이지 이렇게 세 면의 페이지에는 그가 런던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찍었다는 풍경 사진 세 장이 붙어 있다. 맨 앞의 고무 속지에는 육군 훈련소에서 딴 단풍나무꽃이 테이프로 붙여져 끼워져 있고, 신문에서 오려낸 공지영 작가의 “나를 숨기고 혼자 둘 것”이라는 문장이 적힌 페이지가 끼워져 있다. 맨 뒤 고무 속지는 조금 복잡한데 일단 세 장의 포스트잇, 한 장에는 수첩을 선물해 준 친구에게 할 말인지 편지에 쓸 말인지 하는 문장들이 몇 개 적혀있고 다른 두 장의 포스트잇에는 피쉬만즈의 첫 앨범명부터 마지막 앨범명까지가 순서대로 적혀 있다. 아마 당시 푹 빠져있던 피쉬만즈의 모든 앨범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었던 모양이다. 그 세 장의 포스트잇 말고도 접혀 있는 A4용지가 보이길래 펼쳐 봤더니, 참 나 피쉬만즈에 정말 빠져 있긴 빠져 있었구나? 모든 앨범의 발매 연도와 모든 수록곡의 제목을 정리해 둔 문서였다. 그 A4용지 뒤에는 접혀진 음식점 휴지(*감사합니다* 라는 문구 옆에 초록색 장미 그림이 그려진 휴지)에, 버들이 적어 주었던 걸로 기억하는 추천 문학 작품과 작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페이지 안에는 첫 기록 날짜인 2006년 6월 20일부터 마지막 기록 날짜인 2007년 2월 4일까지, 내 소방서에서의 군 생활 절반이 적혀 있다.

세 번째 수첩은 우여곡절 끝에 구입하게 된 수첩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75번 게시물 <수첩>을 확인해주길 바란다.
75번 게시물의 마지막을 나는 이런 문장으로 맺었다.

<정말이지 아쉬운 일이었지만, 한 개의 수첩은 더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마지막 남은 수첩을 주문했다. 수첩은 내일이든 모레든 도착할 것이다. 그러나 그 수첩에는 아마 아무 것도 적지 못할 것 같다. 그 수첩은 그저 ‘이데아와도 같은 수첩’이라는 하나의 가능성의 상징으로, 그렇게 언제까지고 빈 상태로 남겨두고 싶다.>

“너랑도 다른 연인들처럼 언젠가는 헤어지게 될 거잖아. 그건 피할 수 없는 일인 거 너도 알잖아. 그렇게 된다면 나는 너무너무 슬플 거야. 그러니까 우리 이만큼만 친해지자, 이만큼만 좋아하자. 지금보다 더 너를 좋아하게 된다면 나는 그만큼 더 슬퍼질 거야.” 하고 이별을 말하는 마음과 비슷한 마음이었지 싶다.
언제까지고 빈 상태로 남겨두고 싶었지만 그러나, 완벽한 이상형을 눈앞에 내버려 둔 채 60% 혹은 70%를 만족하는 대상과 하는 연애란 참으로 불만족스러울 수밖에는 없는 일이었다. 2008년 9월 3일, 잠시 시간을 갖자고 말하고 멀어진 연인에게 다시금 돌아가듯 나는 결국 완벽한 이상형에게로 돌아갔다.

*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수첩을 다 채우는 데 걸렸던 시간은 평균 6개월 정도였다. 6개월 정도를 적어나가다 보면 가득 차게 마련이었다. 충실한 아날로그적인 기록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 수첩은 사용한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가득 차지 않았다. 아직도 채우지 못한 페이지들이 절반 가량은 남아 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이유를 말해 보자면,  나도 변했고 그와 함께 세상도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전처럼 기록에 대한 집착적인 버릇이 별반 남아 있지 않은 나와 스마트폰이 등장해버린 세상의 만남. 그 만남의 시간은 간편하기만 한 휴대폰 메모장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만난 수첩을, 완벽한 이상형의 수첩을 증발시켜버린 것이다. 아쉬움이나 안타까움 혹은 그리움이라는 마음의 표현 양상도 대부분 그와 함께 증발되었다. 증발해 버린 뒤 남아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추억 뿐이다. 추억이라니, 굉장히 슬픈 단어를 적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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