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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13/10/04  
         name          이대
subject 사회인이 되었다

사회인이 되었다


사회인이 되었다. 라는 문장을 쓰고 싶었던 건 2007년 11월부터였다. 2007년 11월 28일, 돌고래가 이 홈페이지 방명록 게시판에 남긴 글의 첫 문장 ‘사회인이 되었다.’를 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몇 년 후 취업을 하게 되면 나도 저 문장으로 돌고래에게 취업을 알리겠다고. 그때 떠올린 몇 년 후가 이렇게나 먼 미래일 줄은 그때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1.
2011년이었나 2012년이었나, 일 년이 넘는 시간 만에 큰맘 먹고 약속을 잡아 만났던 J는(아, 생각해 보니 2012년 일이다. 라 빠스뗄라에 일하고 있었을 때니까)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던 중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정말 인복(人福)이 있구나.” 그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나는 인복이 있었다. 분명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다들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이지 주변 사람들의 영향으로 지금의 나를 만들어 왔다. 내가 능동적인 인간이 아닌 수동적인 인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주위 사람, 친구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거의 빨아들이면서 자라 온 것이다. 이건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시작해 중학교 시절에는 더 강해졌으며 고등학교 때엔 방식을 조금 달리하여 진행되었다. 그리고 대학교 시절은, 내가 가진 그 성향이 거의 끝에 이른 시기였다.
만약 내가 가진 인복이 미약해 주위의 사람들 친구들이 별 것 아닌 사람들,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 보편적이기만 한 사람들, (나에게 있어) 긍정적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단연코 지금과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훨씬 더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의 사회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전적으로 내 인복 덕이다.
지난 3월, 나는 처음으로 취업 스터디를 시작했다. 뭐 100% 전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스터디를 통해서 좋은 사람들 만나기가, 더 나아가 스터디가 끝나고도 인간적인 만남을 유지할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속한 스터디의 스터디원들은, 하나같이 다시 보기 힘들 정도로 ‘좋은’사람들이었다. 여자 둘 그리고 나까지 남자 둘로 이루어진 이 스터디원들 덕분에 나는, 한동안 놓아버리고 있었던 목표를 향한 걸음을 다시금 걷게 되었고 마침내 지금 그 목표로의 중간 골 지점을 통과할 수 있던 것이다.
스터디원들로부터 받은 영향의 시작은 올해 4월, 중앙일보 계열 잡지사인 제이콘텐트리 인턴 모집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속한 스터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건 나이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모여, 단순히 자소서 첨삭하고 면접 준비하고 하는 게 아닌, 서로가 살아 오며 경험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경험들 가운데 자신은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있는 경험들을 찾아 내는 거라 할 수 있다. 잡지사 취업을 위한 스터디가 아닌, 말하자면 일반 기업 취업을 위한 그 스터디에서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던 스터디원들은 접어두고 있던 ‘글을 쓴다’라는 목표를 강력하게 성원해 주었다. 가족으로부터는 외면당하기만 하던 꿈을 그들은 응원해 준 것이다. 포기하지 말라고, 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영향은 스터디장인 희영씨의, 학교 경력개발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제이콘텐트리 인턴 모집 알림으로 이어졌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나이의 희영씨는, 나는 전혀 모르고 있던 경력개발센터 홈페이지부터 알려 주었고 거기에 올라온 제이콘텐트리라는 잡지사의 인턴 모집 공고까지 전해 주었다. 이건 정보 검색, 더군다나 인터넷에서의 정보 검색엔 젬병인 나에게는 눈물 날만큼 커다란 선물이었다. 모집에서는 탈락했지만 모집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써 나는 접어두었던 잡지사 기자로의 목표를 향해 다시금 걸음을 걷게 된 것이다.
스터디원들로부터의 두 번째 영향은 훨씬 더 강하고 직접적이었다. 제이콘텐트리 인턴 모집에서 탈락해 조금은 기운 빠져 있던 나에게, 나보다 두 살 어린 미영씨는 인터넷 채용 알선 사이트에 올라온 ‘한국잡지협회 잡지교육원 취재기자 양성과정 모집’ 소식을 전했다.

내가 사회인이 되었다는 문장을 쓸 수 있는 건 전적으로 미영씨 덕분이다.

2.
잡지사의 기자가 되는 건 소방서에 있던 무렵인, 2007년부터의 꿈이었다. 꿈이 있으면 당연히 노력이 따라야 하는 법. 소방서 다시 말해 군대에 있던 무렵의 나는 정말이지 열심히 살았다. 현재와는 그리고 군대에 가기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2009년 2010년 2011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뭔가를 위해 노력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기의 내가 어땠는지는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 때의 내 상태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도, 병원의 의사 선생님도, 가족도, 심지어는
엄마
조차도.
사회인이 되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 더 이상은 ‘집’에 속해있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더 이상은 집에 속해 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일 것이다. 이제는 집을 떠나 한 명의 개인으로서 사회에 속하게 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채용 연락을 받은 이틀 후인 지난 수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집에 내려가 점심을 먹고 할머니 댁에 인사를 드리고 온 뒤, 나는 근처 슈퍼마켓에서 큰 박스 두 개를 주워 왔다. 그러고는 그 박스에 만화책 30여 권과 판타지 소설 40여 권을 담아 테잎으로 봉했다. 서울 방으로 부치기 위해서 말이다. 창고로 쓰는 방에 들어가 책꽂이에 쌓여 있던 책을 박스에 담는 것을 보고는 아빠는 거실에서 술기운이 섞인 불콰한 목소리로 궁시렁댔다. 방도 좁은데 쓸데없는 것들 뭐 하러 가져가냐고. 나는 아빠의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책들을 포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기쁠 수 없었다. 더는 아빠의 영향권 안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듣기 싫은 아빠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말이다.
아빠가 나를 걱정하기 시작한 건, 그래서 나를 내 힘으로 사회에 서기에 한참이나 부족하기만 한 아이로 생각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2009년 가을의 일일 것이다. 휴학하고 집에 내려가 잠만 자는 나를 보며 아빠는 엄마에게 말했다. 쟤 좀 이상해 진 것 같다고,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그때부터 아빠는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만을 일삼는 성향이 한층 강화되어 버렸다. 내가 주워 온 박스를 보고도 아빠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건넸다. 그렇게 작은 박스에 책이 들어가겠냐며, 우체국 택배는 박스가 크건 작건 요금은 비슷하다며. 큰 박스는 육천원이고 작은 박스는 오천원이고… 아빠의 말을 듣고 있다가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아빠, 내가 애예요? 나도 그런 거 다 알아요. 박스에 담을 책 양을 생각해서 가져온 거라구요! 이런 소리지름도 집에서 독립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 전날까지만 해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어쨌든 나와 동생이 살고 있는 방 값은 ‘가장’인 아빠가 대 주고 있는 거였으니까. 그런 거니까.

나는 더 이상 아빠에게 기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후련하다. 2012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내가 가지고 있던 두려움이란, 취업이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아닌, 취업이 안 되어서 앞으로도 아빠에게 기대어 살아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었다. 만약에 취업이 되지 않아서 고향으로 내려가야 하면 어쩌지? 고향으로 내려가서 아빠와 함께 살아야 하면 어쩌지? 아빠와 함께 살면서 할아버지 삼촌들과 언성 높여 싸우는 모습을 피할 수도 없이 봐야 한다면 어쩌지? 내내 스트레스 받으면 어떻게 살지?
지난 번 엄마는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엄마 친구가 꽤 큰 중소기업의 대표인데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채용해 준단다, 거기 갈래? 나는 엄마의 그 제안을 거절했다. 내 꿈이 아닌 일이라서? 그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취업하게 되면 엄마 덕분에 취업하게 되었다는 부담감에 결코 집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은 꿈꿀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한 두려움. 이제는 그런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취업했다는 사실보다 더 행복하다.

-
채용 소식을 듣고 만난 한 잡지교육원 동기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빠 지금 표정이 너무 행복한 표정이에요.”

지금 나는 그 말 그대로 행복하다.




챠우챠우 2013/10/07  delete

우왕 행복하다니! 축하해

이대 2013/10/14   

축하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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