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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14/03/25  
         name          이대
subject 지하철에서의 책읽기와 도서관에서 빌린 책 읽기

지하철에서의 책읽기와 도서관에서 빌린 책 읽기


(…) 그 무렵 조그만 가게를 경영하고 있었다.
나는 이십 대 중반이었고,
일하는 틈틈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장수 고양이의 비밀> 中


나는 기본적으로, 독서라는 행위를 ‘취미 생활’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취미 생활이란 것은 시간이 날 때면 기분이라도 풀 겸 하는 행위를 총칭하는 것일 텐데, 나로서는 책을 읽는다는 행동을 도무지 ‘시간이 날 때면 기분이라도 풀 겸’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독서를 하기 위해서 나는 특별한 시간을 안배하며 특별한 장소와 심지어 특별한 자세와 호흡법까지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아마도 몇 달 전까지의 나는 자연스럽게 꺼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런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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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지금까지 네 권의 책을 읽었다. 어쩐지 책이 잘 읽히지 않아 지난 10월 이후 읽은 책이라고는 한 권이 채 될까말까 한데 요즘 한시간 걸리는 출퇴근길에 지하철 안에서 책 읽는 맛이 들려버린 것이다.
그렇게 읽은 네 권의 책은 모두 장편 소설이었는데, 먼저 읽은 건 위화의 <기다림>, 두 번째 읽은 건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세 번째로 읽은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그리고 네 번째는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 1권이다.
<기다림>은 김연수가 번역한 책인데, 그가 번역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고만 있던 책이다. 짧고 심플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글 속에 담긴 메시지가 여간해서는 책으로부터 뭔가를 잘 느끼지 못하는 나에게도 절실하게 다가왔다. 나 역시도 그저 기다리고만 있었던 게 아니었는지, 하는 반성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는 출간된 직후 구입해 읽다가 중간에 잡지교육원 교육도 받고 교육 끝나자마자 취업도 하고 해서 정신없는 바람에 덮어뒀던 책이었는데 이 책에서도 역시나 하루키의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예전에 김연수는 자신의 이글루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하루키의 책은 언제나 하루키만의 느낌이 느껴지고 그것이야말로 하루키를 읽는 이유다." 나도 김연수의 그 말에 동의하는 바다.
디자인팀 전(前) 실장님으로부터 추천받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두꺼운’ 소설 <방황하는 칼날>은 분명히 나에게는 맞지 않는 소설이었다. 그야말로 너무나도 멜로디적 소설(172번 게시물 ‘멜로디적 글쓰기와 사운드적 글쓰기’ 참조)인 것이다. 그나저나 한 번 마음먹고 읽고자 했던 작가의 작품을 한 권만 읽고 접어버리기에는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닌가 싶어 사람들에게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가운데 그나마 감성적인(사운드적인) 작품을 물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읽을 계획이다. 이 소설도 그저 그렇다면 거기서 히가시노 게이고 읽기는 마무리지을 생각이다.
<태엽감는 새>는, 하루키의 작품이며 그와 함께 꽤 이름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독서가 처음 제대로 페이지를 넘긴 독서다. 구입했던 건 아마도 5년? 6년도 더 전의 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독서를 취미 생활이라 생각하지 않던 시기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쉽게 읽어 냈다. 바로 지하철 안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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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정말이지 천천히 읽는 사람이다. 열 두 장에서 열 다섯 장 사이의 단편 소설을 읽는 데 한 시간이 족히 걸린다. 하여 장편 소설에는 쉽사리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장편 소설을 읽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몰라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지하철 안이라는 공간은, 그 부담을 한참이나 떨쳐버리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책 안에 담긴 모든 단어를 완벽하게 읽어 내고 작가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하며 읽어내야 한다는 부담을 떨쳐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불편한 자세로 앉아 출근 시간 한 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던 독서에 대한 필요 요건들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다가왔다. 그 덕분에 나는 한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다시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회사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에도 좋은 점은 있다는 말이다.

지하철 안에서의 독서 말고도 부담이 덜한 유형의 독서가 한 가지 더 있다. 그건 바로 도서관에서 빌린 책 읽기다. 낡아 책장이 덜렁이고, 제본된 중간의 페이지가 제멋대로 쉽게 펼쳐지는 책이면 더 좋다. 중간 중간에 남이 쳐 놓은 밑줄이나 적혀진 낙서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 책은 쉽게 읽힌다.
나는 대부분의 책을 구입해서 읽는 편인데(절판된 책이라면 중고 서점을 뒤져서라도) 학교에 다니던 시기에는 수업 받던 강의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그럴 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곤 하던 책은 어찌나 쉽게 읽히던지. 낡아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 인쇄된 검정 글씨들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내 인생에서 한 가지 버려야 할 것이 보이는 것 같다. 완벽하게 해 내야 한다는 부담감. 그 부담감만 버리면 조금은 쉬워질 것 같다. 책을 읽는 것도,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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