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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14/03/28  
         name          이대
subject 요즈음의 생활

요즈음의 생활


입대한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어느새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간이 지나간 것이다. 지난 4월, 아직 막바지의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에 입대해서 지금은 벌써 새로운 추위의 초입에 다다라 있다. ‘내가 입대한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라는 문장은 마치 그 6개월 동안 꾸준히 무언가를 해 왔고 지금에 이르렀다, 와 같은 느낌을 주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제 혼자 흐르고 또 흘러 6개월이나 지나가 버렸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나는 무엇도 한 것이 없고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반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제 스스로 흘러갔다니.

그렇게 지나가 버린 반 년이라는 시간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요즘, 그동안은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마는 괴물같기만 하던 군대 2년이라는 시간도 정말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만큼의 시간을 세 번만 더 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 번의 시간들도 내가 굳이 신경쓰고 기다리지 않아도, 지금껏 보낸 반 년과 같이 제 스스로 술술 흘러가 줄 것을 알기 때문에 전혀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요즈음의 생활은 지난 반 년간의 생활 중 가장 마음에 든다. 무언가 흐름이 느껴지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은 자연스레 내일로 이어지는 생활. 나는 그런 생활을 그리워하고 있었나 보다. 마음에 드는 요즈음의 생활 가운데서도 특히나 마음에 드는 것은, 초조함과 불안함을 많이 가라앉히고 지내고 있다는 점이다. 녀석들이 언제 또 그 검고 불경스런 대가리를 치어들지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하여튼 요즘엔 잠잠하다. 덕분에 내 생활과 마음은 언제나 요사이의 날씨와 같은 고기압의 청명한 맑음이다.

요즈음의 그 마음에 드는 생활에 대해서 정리를 좀 해보자면, 아침에는 일어나 청소를 일단 하고, 그다음 세수를 하고, 조용한 대회의실에 가서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한겨레 신문에서 금요일마다 나오는 도서, 에세이, 문화 섹션인 <18.0℃>을 40~50분 정도씩 읽는다. 하루에 4~5페이지씩 읽는데 그렇게 읽으면 다음 주 금요일이 올 때쯤이면 다 읽게 된다. 읽고 나면 여덟 시쯤 된다. 아침을 먹고 양치를 하고 부속실에 내려가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서장님이 출근하시면 경례를 하고, 간부회의에 녹차를 내간다. 간부회의가 끝나면 보통 아홉 시 이십 분에서 삼십 분 정도가 된다. 그럼 나는 숫타니파타를 한 번 베껴 쓴 후 책을 읽기 시작한다. 보통 오전에는 창비의 시나 단편을 읽고 점심을 먹고 난 후부터는 다른 책을 읽는다. 지난 한 달간은 한국 근현대사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저녁을 먹고는 삼십 분쯤 저녁잠을 자거나 쉬거나 하고 일곱 시쯤에 다시 부속실로 내려가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했다. 아홉 시쯤 다시 생활실로 올라가 점호를 취하고 인간극장을 본다. 어찌 된 영문인지 1회와 5회는 매 번 꼭 놓친다. 인간극장이 끝나면 세수를 하고 이것저것 하다가 열 시쯤 이불을 펴고 드라마를 본다. 지금까지 월요일 화요일에는 주몽을 보아 왔는데 요즘들어 영 재미가 없어서 다음 주부터는 그냥 안보고 일찍 잘 생각이다. 수요일 목요일은 지금까진 볼만한 드라마가 없어 일찍 잤었는데 지난 주 목요일에 한 번 본 황진이 2회가 퍽 괜찮은 느낌을 주어서 앞으로는 황진이를 보게 될 것 같다. 여튼 그런 시간 후에 잠을 청하는데 요즘에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앨범 한 개씩을 밤의 BGM삼아 듣고 자곤 했다.

이런 게 요즈음의 내 생활이었다.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그 이전의 생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엔 모든 게 마음의 문제였다.
그냥 다음의 시간들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제대 후의 시간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에 집중해 살기로 했다. 군대 2년의 시간동안 쌓아나갈, 변화할 나를 생각하지 말고 오늘의 시간동안 쌓아나갈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했다. 생활이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분명 군대에 오기 전의 생활보다는 훨씬 재미없고 단조롭고 무기력한 하루하루이긴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것에 불평불만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니까.
불평불만과 초조함을 벗어 던지고 하루와 또 하루를 이어 나가고 하루와 또 하루를 쌓아 나가는 생활. 이게 내 요즈음의 생활이다.

(2006.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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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면, 다시는 그런 식으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 다시 두근두근 기대가 된다. 불평불만과 초조함을 벗어 던지고 하루와 또 하루를 이어 나가고 또 이어 다가는 생활. 이게 내 앞으로의 생활이 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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