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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14/04/17  
         name          이대
subject 모든 가정에는 아픔이 있다

모든 가정에는 아픔이 있다


안녕하세요? 이대훈입니다. 저는 머릿속에 들어있는 문장들을 말로 꺼내는 데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적어 온 글을 읽으려 합니다. 주어진 5분이라는 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 글은 재미도 없고 교훈도 없으며 그렇다고 감동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른 할 일이 있으신 분은 그냥 흘려 넘기셔도 괜찮습니다.

글의 제목은 ‘모든 가정에는 아픔이 있다’ 입니다. 알고 있는 분도 계시고 모르는 분도 계실 테지만, 제가 매일같이 모자를 쓰고 출근하는 이유는 제 머리 숱이 꽤 없기 때문입니다. 출근 첫 날, 제 머리카락을 보신 분께는 그건 가발이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 머리숱이 줄어들어 버린 건 2010년 이후의 일입니다. 그 해에 저는 뇌종양 진단을 받았습니다. 주변에 암 치료를 받은 분이 있거나 혹은 자신이 항암 치료를 받은 분이 계시다면 잘 아시겠지만, 항암 치료시에는 온 몸의 털이 전부 빠져버립니다. 겨드랑이털은 물론이고 다리털, 음모, 심지어는 속눈썹까지 전부 말이에요. 항암 치료라는 게 그런 식으로 온 몸의 세포들을 한 번 다 갈아 엎는 치료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항암 치료시에 완전히 다 빠져버렸던 제 머리카락은, 치료가 끝난 후에도 전부 돌아오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예전부터 저를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너는 뭐 전에도 머리숱이 많은 건 아니었지”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맞아, 어쩌면 나는 내 머리숱이 이렇게 없는 걸 항암 치료 때문이라고 말하며 위안받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하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이야기는 넘어가겠습니다.

당시 제 뇌종양의 증상은, 머리가 아픈 것도 아니고 눈 앞이 뿌옇게 보이는 것도 아니라 바로 잠이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잡지 4월호에 실린 <개를 그리다>의 작가 정우열씨 이야기에서 죽은 강아지 ‘소리’가 뇌종양 진단을 받고 죽기 전에 잠을 많이 잤다는 이야기를 보니까, 그 때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 때는 정말 아무 것도 못 하고 잠만 잤습니다. 아무리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다음 날 눈 뜨는 시각은 정오 이후였어요. 요즘 저를 보고 ‘머리가 나쁜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 맞습니다. 저 머리 나쁩니다. 병에 걸리기 전에도 머리가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뇌종양을 앓고 치료받을 때 정말 머리가 나빠졌고 지금은 많이 회복한 상태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우유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편의점에서 1000미리 우유를 사서, 당시 살던 원룸 방에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더니 바로 어제 샀던 1000미리 우유가 아직 뜯기지도 않은 채 저를 보고 있더라구요. “너 지금 뭐하냐?” 하듯이요.
뇌종양인줄도 모르고 그렇게 잠만 자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뇌종양 진단을 받고 1년 반 정도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를 받은 이후 제가 느꼈던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엄마의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이 글의 제목인 모든 가정에는 아픔이 있다, 는 것입니다.

모든 가정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저희 집의 아픔은 바로 저였죠. 제가 뇌종양인줄도 모르고 휘청대고 있을 때 저희 집 분위기는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뭘 시키지 않아도 지가 알아서 잘 한다고 부모님은 저를 말하곤 하셨는데 그 때는 그저 잠 자는 일밖엔 하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 내려갔을 때 그런 저를 보고 부모님은 많이 싸우기도 하셨어요. 아빠가 "쟤 좀 이상해 진 것 같다”고 얘기하면 엄마는 저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못한 채 “무슨소리냐"고, "대훈이가 뭐가 어떻냐”고 대꾸하면서요. 저는 잘 모르지만 동생 말로는 엄마가 그 때 울기도 많이 우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저희 아빠는 미신은 일절 믿지 않는 분이신데, 그 때 저 때문에 무당을 찾아가서 돈 500만원을 주고 굿도 하셨대요.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참 실감이 나더라구요, 그 때 저를 보는 가족의 마음이 어땠을지.

그런데 말이에요, 그렇게 큰 아픔을 겪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들이 하나같이 가지고 있는 아픔들이 말이에요. 정신적이든 아니면 신체적이든, 자기 자신이든 혹은 자기 가족의 아픔이든 모든 가정에는 나름의 아픔이 있더라구요.

제 친구의 동생 이야기를 할게요. 그 친구가 캐나다로 어학연수 가 있을 때 이야긴데 동생이 군대에서 제대를 할 무렵이었대요. 해군이었는데 배에 세워 둔 채로 실려 있던 포탄 하나가 넘어지려 하는 걸 그 동생이 혼자서 막으려다가 포탄에 깔렸대요. 포탄 무게가 500킬로그램쯤 한다나요. 다리를 심하게 다치고 머리도 다쳤는데 결국 한 쪽 다리는 무릎 아래를 잘라냈고 다리 수술하다가 머리 수술할 시간을 놓쳐서, 친구 말로는 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그 동생은 지금 의족을 착용하고 있어요. 친구가 어학연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얘네 가족은 멀리서 걱정할까봐 친구한테 동생 얘기를 안 했던 거예요. 사실을 알고 엄청 울었다고 하더라구요. 동생한테 괜히 죄책감도 들구요.
제 또 다른 친구의 동생은 수능시험 본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대요. 열쇠고리였나? 아니면 예전 가지고 놀던 다마고치에였나? 하여튼 거기에 끼워 놓은 동생 고등학교 무렵 사진을 보니까 친구와 친구 가족의 마음이 어땠을 지 짐작이 가더라구요.
그리고 제 다른 친구는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나서 하반신 마비가 왔어요. 그 친구는 노는 애들처럼 막 그런 오토바이를 탔던 게 아니고, 정강이 보호대며 팔꿈치 보호대며 전신 보호복을 입고 또 머리에는 헬멧도 꼭 쓰고 제대로 오토바이를 타던 친구였는데 그래서였는지 사고가 났을 때 다른 데는 다 멀쩡한데 목을 다쳐서 하반신 마비가 온 거래요.
또 친구 한 명은 재작년 7월에 죽었어요. 뇌종양으로. 그 친구 장례식장에 가서 친구 어머니 아버지와 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런 친구들과 친구들의 가족을 보면서 저는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모든 가정에는 아픔이 있는 것 같다”고. 제 친구들의 가족만 해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해 뭐하겠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가정에는 아픔이 있다는 말은, 그런 아픔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동정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지금 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여러분의 가정에도 모든 다른 가정과 마찬가지로 문제 또는 아픔이 있거나 앞으로 있을 거라는 말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 지금의 생활이 너무 힘들고 괴로운 분은 당신 혼자만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시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으라는 말씀이며, 지금의 생활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분은 언젠가 분명히 아픔이 다가올 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고 지금부터라도 마음의 준비를 해 두시라는 말씀입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언제 찾아올지 모를 회사 회의 시간의 연설(?) 강연(?) 차례를 염두에 두고 생각하던 이야기인데, 어제 일어난 여객선 사고 사건을 보고 적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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