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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15/01/29  
         name          이대
subject Bob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련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암사자의 이야기

Bob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련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암사자의 이야기.


:::

배가 너무 고프지만 Bob을 먹을 수 없어요, 크르릉-

지난 달 까지는 매 끼마다 일곱 마리의 닭을 주던 Bob이었는데
이번 달부터는 다섯 마리씩밖에는 주지 않네요.
나도 알고 있어요 동물원에 대한 시의 재정 지원이 끊겼다는 건.
그래요. 시로서도 별반 평판이 좋지 않은 동물원은 애물단지에 불과했겠죠.
사실 동물원이라고 하지만 동물도 몇 마리 없구요.
작년 겨울에 제가 이 동물원에 들어오기 전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보잘것없는 동물원 이었더군요.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라고는 고작해야 소, 젖소, 염소, 양, 토끼, 칠면조, 거위 뿐인거였어요.
무슨 농장도 아니고, 이래서야 원 초등학교에서 교육을 목적으로 설치한 사육장보다도 못하잖아요.
그리고, 아니, 어떻게 동물원에 기린 하나 없는 거예요?!
수족관의 기본은 왕가오리,
식물원의 기본은 미모사,
동물원의 기본은 기린,
이게 기본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기린도 없는 동물원을 열 생각을 할 수가...
동물 구매 담당자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싶군요,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런 동물들만 사는 건지.

시 담당자 입장에서도, 시민들로부터 '동물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시설에 대한 컴플레인이
많이 들어왔던 모양이더군요?
시의 경관도 해치고 냄새도 나고 배설물 처리도 어렵고, 하는 내용의 컴플레인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다 알고 있어요.
알토란 같은 시의 중심지에 공간만 차지하고 들어서 있는 이 동물원 때문에 시는 제대로 발전을 못하고
그러니 땅값도 비슷한 규모의 다른 시들에 비해 한참이나 떨어진다는 게 그들의 속마음이겠죠.
그들은 이 동물원을 없애고 그 부지에 쇼핑몰이라든지 멀티플렉스라든지 그런 건물이 들어서는 게
훨씬 더 이익일 거라고 생각하는 걸 거예요.

아니 그래도, 새싹처럼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하셔야죠!

라는 말도 하기가 부끄럽죠 뭐 사실.
시에 있는 초등학교들이 연례 행사처럼 봄, 가을 소풍을 동물원으로 오고 있지만
아이들마저도 이 동물원의 동물들에는 흥미를 갖지 않는걸요. 사실 뭐 그럴만도 하죠.
그래요 뭐 볼것도 없고 냄새만 날 뿐이니까.
지난 번 가을 소풍때는 더럽고 냄새나는 염소가(그래도 생긴 건 귀엽게 생긴 녀석이었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었나 2학년이었나 하는 한 여자 아이의 뺨을 핥았는데
아이가 기겁을 하고는 기절을 하고 말았지 뭐예요?
그때 그 아이 엄마가 담인 선생님이랑 동물원 시설 담당자를 찾아와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갔었죠.
그 소동 이후로는 학교 소풍으로 동물원을 찾는 발걸음도 뜸해졌구요.

휴... 그래도 동물원 운영부 쪽에서는 어떻게든 동물원을 지켜 보려고 애를 썼어요.
그래서 심한 예산 출혈을 감수하고 지난 겨울에 저를 인근 시의 동물원으로부터 들여온 것이기도 하구요.

제 생각에는, 역시 그들은 제가 아니라 기린이라던가 코끼리를 들여 왔어야 해요.
동물원을 주로 찾는 건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고,
또 역시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아주 멀리서 바라봐야만 하는 사자나 호랑이보다는
그래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코끼리나 기린이거든요. 그 길고 또 큰 몸집이라는 메리트도 사자보다는 훨씬 낫구요.

아니, 하다못해 사자를 들여오려면 갈기가 있는 숫사자를 들여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상식적으로.
암사자를, 그것도 한 마리만 덜렁 들여와서 우리 안에 집어넣어 놓으면,
우리 밖의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게 암사자인지 퓨마인지 땡땡이 무늬를 잃어버린 표범인지 도대체 알 게 뭐랍니까?

어찌 된 일인지 아무래도 실수한 거죠. 제 생각에는 관료제 때문이 아닌가 해요. 지위가 나뉘어 있는 관료제 하에서는
그 어떤 일이든지 제대로 진행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거든요. 가령 이런 거겠죠,


<이봐, 오늘 운영부에서 올라 온 결재서류 봤어?>
<네, 봤습니다 과장님.>
<이자식들은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코끼리를 들여오자는군.
  그 느릿느릿 기어다니기만 하는 코끼리를 대체 왜 들이자는거야?
  참 나, 그게 볼게 뭐가 있다고. 답답하기만 하지.
  또 코끼리가 똥을 얼마나 많이 싸는데, 그 냄새는 다 어쩔거야.
  역시 아랫것들이란 생각이 없어 생각이.>
<헤헤, 그러게 말입죠.>
<기왕 돈 들이는거 사자를 들여 오자구 사자를 남자답고 얼마나 좋아.>
<에... 그게 말이죠 숫사자를 들이기에는 예산이 부족해서요...>
<뭐야? 그래? 그럼 되는대로 암사자라도 들여!>
<헤헤, 알겠습니다.>


이런 상황이 눈 감고도 뻔하게 보입니다, 보여. 쯧쯔.

어쨌든 제가 동물원에 들어온 후 처음 몇 주 정도만 반짝 관광객이 늘었을 뿐
사정은 별반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시민들의 컴플레인을 끝내 못 이기는 척 하며
시에서는 재정 지원도 끊어 버렸구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시의원과 건설업자 사이에 알 수 없는 거래가 있었다고도 하는데
그런거야 뭐 사실 뻔한 거겠죠. 벌써 멀티플렉스를 포함한 쇼핑몰의 계획도가
시의회에서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던 걸요.

휴... 이렇게까지 된 이상 동물원이 문을 닫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다른 동물들이야 초등학교라든가 혹은 공원 같은 곳으로 팔여 갈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다 늙은 저 같은 암사자를 데려 갈 동물원도 없을 것 같구요.
동물원 입장에서도 저는 참 커다란 골칫거리겠지요.
계속 먹여 살리자니 그도 만만찮은 비용이 들고, 또 섬뜩한 말이지만 죽이자니 여기저기
이목이 두렵고, 해서는 일단 식사 공급량을 그렇게나 줄여 버렸네요.


그래서 저는 요즘 언제나 배가 고파요.
배가 너무 고파서 지난 번에는 바닥의 흙을 좀 먹어 보았는데 두 번 다시 상상조차 하기 싫은 맛이 나더군요.
아.. 대체 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앗,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나 봐요. 저기 우리의 문이 열리고 Bob이 들어오네요.
오- Bob, 역시 내 배고픔을 채워 주는 건 당신밖에 없어요! 사랑해요!

응? 그런데 제게 다가오는 Bob의 표정이 왜 저렇죠? 저건 대체 무슨 표정일까요?
뭐야 Bob! 왜 닭이 세 마리 뿐이야?!! 크르릉-!
어째서, 어째서냐구-! 어서 말해봐 크르릉-!
Bob 당신도, 더 이상은 나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야?!
크르릉-! 이 무책임한 사람-!
Bob, 당신 나한테 밥취급 당하고 싶은거야? 대답해, 대답해! 크르릉-


아...
Bob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나가 버렸어요.
난 그저 그의 진심어린 대답이 듣고 싶었을 뿐인데.
그의 어깨를 잡은 가냘픈 내 손길을 왜 그렇게나 매몰차게 뿌리쳐 버린 거였을까요.
그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자 했던 내 얼굴을 왜 그렇게나
잠시라도 쳐다보기 싫다는 표정으로 뒤로 해 버린 거였을까요.

오-! Bob-! 돌아와요! 크르르르릉.



:::


                       << 사 건 일 지 >>


이름 : Robert K. Sneilling

발생일자 : 20xx. x. xx. ~

발생장소: D동물원, M시

사건개요 : M시의 쇠락해가는 동물원에서 사자를 조련하던 Robert K. Sneilling (32) 씨는
              지난 x월 xx일 자신이 조련하던 암사자에게 먹이를 주던 중 갑자기 자신에게
              달려든 암사자에게 잡아먹힐 뻔 하였으나 가까스로 우리 밖으로 도망쳐 목숨을
              구함.
              그러나 그 이후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PTSD에 시달렸다고 함.
              평소 그와 가까이 지내 온 지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실종되기 직전까지
              '꼭 전해야 할 진실이 있어... 꼭' 이라는 분명한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말만을
              중얼거리며 이곳 저곳을 헤매고 다녔다고 함.
              항구를 끼고 있는 가까운 M시의 지리적 특성상, 화물선에 올라 타 다른 도시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 외국으로까지 대상자가 이동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수사의 효율성을 위해 염두에 두지 않기로 결정.


              * 위와 같은 인물을 목격하는 분께서는 가까운 경찰서나 신경정신과의원으로
                전화 바랍니다.


:::


(2006.12.)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달에서 만나요'의 첫 출제 문장이었던 '배가 너무 고프지만 밥을 먹을 수 없어요' 를 첫 문장으로 해서 적은 두 번째 글이었다(44번 게시물 참조). 지금은 숨겨진 돌고래의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받아 와서 올린다.
참, Bob은 Robert라는 이름의 애칭이다(마이클을 마이크, 윌리엄을 빌 이라고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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