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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15/05/05  
         name          이대
subject 책갈피들 (1)

책갈피들 (1)


책갈피, 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책이라는 글자에 왠지 어울리지 않을 듯한 ‘갈’이라는 글자와 ‘피’라는 글자가 따라붙어 만들어진 단어 책갈피. 하지만 그 모양새야 어떻든 단어의 의미를 따져 보면 귀엽기만 하다. ‘어디서부터 책을 펼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 그 갈피를 일러주는 물건’. 외국어로 책갈피를 찾아 봐도 고작 나오는 게 bookmark나 書標(서표) 같은 시시껄렁한 단어 뿐인데 우리나라 선조들의 센스에 다시한번 무릎을 치게 된다.

책갈피, 를 좋아한다. 책갈피를 책에 꽂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보다 책갈피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책갈피를 만들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


1.
맨 처음 책갈피를 만들어 선물한 사람은 버들이었다. 2004년 여름, 독일로 공부하러 간다는 버들에게 뭔가 줄 게 없을까 싶어 두꺼운 색도화지를 네모낳게 오려 한 면에는 중앙에 월계관처럼 둥그렇게 말려진 버드나무 가지를, 다른 면에는 면의 배경에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버드나무 가지들을 그려넣었다. 지금도 책갈피에 그림을 그려 넣는 패턴은 첫 책갈피와 비슷하다. 한 면에는 선물할 대상을 아이콘화 한 사물을 중앙에 넣고, 다른 면에는 그 사물과 연관된 배경을 그린다. 그리고 그렇게 그림이 그려진 도화지(보통은 색도화지)를 코팅하고 상단 중앙에 구멍을 뚫어 꿰어넣은 실을 묶는다.
버들에게 선물한 책갈피를 만들 때에는 일반적인 펀치로 구멍을 하나 뚫고 그 구멍에 연두빛 종이를 묶었는데, 종이의 재질과 가위로 조금 오린 그 모양이 정말로 버들잎과 비슷해서 만족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로 만들었던 책갈피는 버들에게 줄 책갈피를 만들 당시 지내던 기숙사의 방 형에게 준 것이다. 책갈피를 만드는 나를 본 방 형이, 책에 끼워 말려 두었던 작은 풀꽃을 나에게 주며 그걸로 책갈피를 만들어 달라 말했고 나는 그 풀꽃을 풀로 종이에 붙여 책갈피를 만들었다. 아마 뒷면에는 풀꽃들을 배경으로 그렸었지 싶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2.
세 번째로 책갈피를 만들어 선물한 사람은 2005년 학교 박물관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친해졌던 진숙누나였다. 그런데 어쩐지 어떤 그림을 그려 넣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당시에는 책갈피를 만드는 것 만큼 중요한 일들이 나에게 많이 일어났던 모양이고 따라서 내 기억은 책갈피를 만들어 선물한 기억을 그리 심각하게 처리하지 않은 듯 하다. 지금 남아있는 세 번째 책갈피에 대한 기억은, 한 면에 그려넣었던 한자로 된 누나 이름의 캘리그래피 뿐이다. 반대 면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 라고 쓰고 밤에 잠자리에 누워 생각하다 보니 어떤 그림을 그렸던 건지 생각났다. 당시 누나와 함께 읽고 있던 만화책 '유리가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물로 등장하는 홍매화나무를 그려넣었다.
이 책갈피를 만들 때는 상단에 펀치로 구멍을 뚫지 않고 칼로 작게 네모난 구멍을 오려 실을 꿰었다. 처음 책갈피를 만들 때 뚫었던 펀치의 구멍이 작은 책갈피에 비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책갈피의 구멍 크기에 대한 내 편집증적인 집착은 다섯 번째 책갈피에서야 비로소 해결되게 된다.


3.

  

네 번째 책갈피를 선물한 시기와 사람은 2012년 봄, 돌고래였다. 왜인지 모르게 돌고래에게 책갈피를 선물한 장소와 그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때 분명 돌고래와 함께 가려고 계획하고 있던 학교 근처의 카페는 도착해 보니 문이 닫혀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 카페 아래 아래에 있던 카페로 들어가 그곳에서 돌고래에게 책갈피가 담긴 편지 봉투(카드 봉투)를 건넸다.
돌고래에게 만들어 준 책갈피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돌고래가 그려진 앞면보다 해변이 그려진 뒷면이다. 해변으로 밀려온 파도의 포말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수정테이프를 조금씩 끊어 이어붙이고 그것을 샤프 펜슬의 날카로운 끝 부분 금속으로 긁어냈다. 그렇게 만들어 낸 표현이 책갈피를 만든 나로서도 너무나 마음에 드는 거였다. 뭐 받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는 거지만 하여튼. 해변 모래의 색깔과 붉은 불가사리의 색도 마음에 들었다.
돌고래에게 줬던 책갈피에는 아직 구멍 크기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 구멍을 뚫지 않았다.


4.

  

다섯 번째로 만든 책갈피는 2012년 여름, 아르바이트했던 라 빠스뗄라의 식구들에게 선물한 책갈피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라 빠스뗄라에서 나는, 그 전까지는 경험할 수 없었던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말하자면 소위 부자들의 사고 방식과 식사 패턴 같은 것들이 나에게는 참 신기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서래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라 빠스뗄라의 사장님과 사모님은 여유있는 중산층의 생활 양식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두 분 모두 굉장한 예의 범절을 갖추고 계신 분들이었고 스무 살 이상 나이가 어린, 한낱 아르바이트생인 나를 항상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었다.
사장님 사모님 말고도 라 빠스뗄라의 매니저님과 주방 이모님 모두 착하고 긍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분들이었다. 매니저님과 주방 이모님으로부터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라 빠스뗄라 식구들에게 선물할 책갈피의 기획은 우선 이랬다. 각각이 매장에서 맡고 있는 역할을 이미지화 해서 그려 넣자. 먼저 커피를 내리는 매니저님은 앞면에 에스프레소 머신의 포터필터를 그리고 뒷면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라 빠스뗄라 피자를 담당하시는 사모님은 피자를 뜨는 세모난 칼과 라 빠스뗄라 피자를. 스파게티와 각종 요리를 담당하는 주방 이모님은 포크와 스파게티를. 그리고 매장의 인테리어와 곳곳에 그려진 그림을 직접 맡았고, 음악을 좋아해 집에는 수천 장의 LP판이 있다는 사장님은 붓과 망치 그리고 LP판을.
이렇게 집에서 만들어 간 책갈피를 식구들에게 선물했을 때, 가장 감격해 하셨던 건 사모님이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셨다는(이 날 들었다) 사모님은 각각에게 선물한 네 개의 책갈피를 뺏으셔서 라 빠스뗄라 내부의 나무에 걸어 두셨다. 지금도 서래마을 라 빠스뗄라에 가면 나무에 매달린 네 개의 책갈피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다섯 번째 책갈피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들은 바로 구멍이다. 그 때 광화문 교보문고 한켠의 문구점에 간 나는 직원에게 혹시 구멍 크기가 작은 펀치는 없냐고 물었고 그는 나에게 ‘아일렛펀치’라는, 꿈에서도 소망하던 딱 좋은 사이즈의 구멍을 뚫는 펀치를 소개시켜줬다. 게다가 아일렛이라는 금속 테두리까지 끼울 수 있는 펀치를! 그래서 이후의 책갈피들에는 전부 금속 테두리가 끼워진 구멍을 뚫게 됐다.




-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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