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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16/03/08  
         name          이대
subject 할머니가 없는 명절이란 어떤 느낌일까

할머니가 없는 명절이란 어떤 느낌일까


할머니가 쓰러지셨다. 3주 전의 일이다. 설 연휴 음식준비 다 하시고 상경하는 나와 내 동생, 친척들에게 음식 다 챙겨주시고 그렇게 올해도 명절 일 도맡아 마무리 지으신 며칠 뒤, 부엌에서 쓰러지셨다.

*
우리 가족 누군가의 변고 소식을 나에게 전달하는 건 언제나 아빠가 아닌 엄마다. 통화 속에서 엄마는 항상 차분하지만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한다. 대훈아, 할머니 쓰러지셨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의 3월호 마감이 닥쳐온 때여서 휴가를 쓰지 못하고 할머니의 병실에 찾아가지 못한 채 정신없이 며칠을 보냈다. 할머니의 상태를 물으려 걸었던 엄마와 통화에서, 아빠의 목소리는 전화의 배경으로 뭔가 잔뜩 들뜬 것만 같은 목소리로 집에 찾아온 친구 부부에게 할머니의 상태인지 뭔지를 떠들고만 있을 뿐이었다.

마감을 마친 지지난 주말에는 동생과 할머니의 병실을 찾았다.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왼쪽 뇌의 혈관이 막혀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움직이지 못하셨고, 말을 담당하는 뇌도 좌뇌인 것인지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셨다. 움직일 수 있는 오른팔은, 풀어 놓으면 코에 끼워둔 산소호흡기와 팔뚝에 찔러 둔 링거 바늘을 자꾸만 빼신다는 이유로 침대 난간에 묶여 있었으며 오로지 오른 다리만 할머니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병실에 들어가 할머니의 모습을 본 동생은 눈이 새빨개질 때까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왠지 모르게 익숙하기만 한 표정으로 그렇게, 동생은 울었다. 소리죽여 흐느끼던 나는 동생이 우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금은 당황했지 싶다. 어떤 이유 때문에 당황했던 것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항상 나를 대할 때면 웃는 낯이던 녀석의 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2010년 즈음의 나를 보던 녀석의 표정이 떠올라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할머니는 침대 위에 누워, 묶여 있는 오른손으로 나와 동생의 손을 꼭 잡아 주셨다.

*
내가 기억하기로 할머니가 입원하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내가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의 일이다. 여섯 살 때였나, 일곱 살 때였나? 어린 시절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나에게 그 날의 일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직 우리 가족이 독립하지 못하고 할머니 댁, 보통은 할먼네라고 부른다, 에서 함께 살고 있을 때 어린 나와 동생의 손을 잡고 시장을 보고 돌아오시던 길에 할머니는 자전거에 치이셨다. 동네 국민학생 녀석의 자전거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할머니는 시멘트 도로 위에 쓰러져 피를 흘리셨고, 동생은 손에 들고 있던 핫도그를 길 옆 도랑에 빠트린 채 엉엉 울었다. 무슨 마음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울지 않은 채 가만히, 내가 들고 있던 핫도그를 동생의 손에 쥐어주었다.

두 번째는 아마도 2007년 겨울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대 휴가를 받아 서울에 올라갔던 다음 날이었다. 친구들을 만나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하고 고속터미널에서 아침 버스에 올라 타 집으로 내려왔다. 꽤 이른 아침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향 터미널에 내려 도착했다는 말을 하려 걸었던 전화에서 엄마는 역시나 차분하게 울음을 억누른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어젯밤에 쓰러지셔서 지금 서울 병원이야, 둘째 삼촌 차타고 서울로 왔어. 너 아직 서울이지? 여기 병원으로 와. 나는 태안에 내려왔다는 말을 하지 않은 채 다시 터미널로 들어가 서울행 표를 끊었다.
이 날 할머니가 쓰러지셨던 이유는 수면제를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위험한 상황을 의도하시고 수면제를 드셨던 게 아니라, 그저 잠을 자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나는 그저, 그렇게만 알고 있다. 그 날 둘째삼촌은 침대 옆에서 새빨개진 눈을 하고 서 있었고 큰삼촌은 술에 취해 불콰해진 목소리로 할머니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고 누워 있던 침대 난간을 붙잡은 채, 엄마 내가 앞으로 잘할게 앞으로는 잘 할게 하는 말을 되뇌고 있었으며 나는 잠에 취해 병원의 분위기에 취해, 병실에 자리가 없어 복도에 나와 있던 할머니의 침대를 몽롱한 기분으로 바라보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
지지난 주 동생과 갔던 병실에서 할머니에게 동생의 취업 소식을 전했다.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시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계셔 정신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눈만 뜨고 계신 것인지 불명확한 할머니에게, 할머니 재훈이 취직했어요, 라고 말씀드리자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고 있던 눈동자를 움직여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셨다. 좋은 회사래요 할머니, 라는 말에 할머니는 오른쪽 입술 끝을 들어 올려 웃는 표정을 지었다.
좋은 회사에 취업했다는 손주에게 얼마나 해주고 싶은 말씀이 많으실까. 얼마나 잘했다고 쓰다듬어주고 싶으실까. 명절 때마다 할머니 댁에 찾아가면 그렇게나 손주들 챙겨주시느라 바쁘신 할머니인데, 해주고 싶은 말씀 다 못해서 얼마나 답답하실까. 우리가 병실을 떠날 때까지 할머니는 꼭 잡은 나와 동생의 손을 놓지 않았다.

지난 주 주말에는 민지와 할머니의 병실을 찾았다. 몇 달 전에, 집에 인사하러 갔을 때 할머니께도 민지 얼굴을 보여드렸다면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진 않았을 텐데. 병실에 누워 있는 할머니에게 민지를 보여드리기가 조금은 죄송한 일이었다. 그래도 할머니께, 할머니 제 여자친구예요, 라고 말을 꺼내자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던 시선을 민지에게로 돌리시곤 오른쪽 입술을 올려주셨다.

할머니가 쓰러지시기 전에 나는 이런 상상을 종종 하곤 했다. 명절을 맞아 고향 집으로 민지와 함께 내려가 온 가족들에게 민지를 소개하고, 할머니 앞에 앉아 엄마 동생 작은아빠 작은엄마 그리고 민지와 함께 한참이나 웃고 떠들며 명절 준비를 하는 상상을. 여자라고는 할머니 작은엄마 엄마 이렇게 셋밖에 없던 우리 가족에 민지라는 한없이 경쾌한 존재가 더해져, 한참이나 가라앉아 있기만 한 우리 가족들에게 새로운 활기가 피어나는 상상을 말이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면 어떻게 되어버릴까. 할머니가 안 계신 명절이란 상상조차 되지 않는데. 할머니가 없는 명절이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그 때도 나는 명절이면 고향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을까? 아무 것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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