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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16/03/24  
         name          이대
subject 해양모험가 김승진 선장 인터뷰

해양모험가 김승진 선장 인터뷰 (<공구사랑> 2016년 2월호)



209일간 요트로 무원조·무기항 세계 일주 모험가 김승진 선장
“공구 없이는 세계 일주 꿈도 못 꾸죠”



아라. 지구상 육지 이외의 움푹 패인 곳에 물이 채워져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해양의 우리말.
파니. 꿈틀꿈틀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의 옛 이름 달파니.
아라와 파니가 하나로 합쳐진 이름의 요트 아라파니호를 타고,
단독으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김승진 선장의 인생 항해법.


- 다큐멘터리PD 김승진, 모험을 좋아하는 자신을 깨닫다

2014년 10월 19일. 충남 당진의 작은 항구 왜목항에서 요트 한 대가 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 출항했다. 출항의 목표는 세계 일주. 그것도 혼자서 다른 선박의 도움 전혀 없이, 어떤 항구에도 들르지 않는 무원조·무기항 세계 일주가 요트 ‘아라파니’호의 목표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5년 5월 16일 아라파니 호의 선장이자 유일한 승무원인 김승진 선장(55)은 모두가 실패와 사고를 걱정하던 세계 일주를 성공으로 끝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왜목항에 돌아왔다. 무려 209일에 걸친, 지구의 둘레보다도 긴 장장 42,000km의 항해였다. 우리나라 최초, 세계에서도 여섯 번째의 성공이었다.
일주를 마치고 여러 강연과 방송 출연으로 바쁜 김승진 선장을, 이순신 장군의 격전지 한산도가 지척에 보이는 전남 통영 요트 정박장에서 만났다.
그런 사람이 있다. 멀리서 보던 모습과 가까이서 보는 모습이 다른 사람. 사회적인 모습과 개인적인 모습이 다른 사람. 하지만 김 선장은 전혀 반대의 사람이었다. 그는 TV방송을 통해, 다큐멘터리를 통해 비쳐지던 모습과 100퍼센트 동일한 모습과 말투, 그리고 태도를 취했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솔직한, 너무나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마음 속 모험을 좋아하는 본성을 숨기지 못하고 모험을 계속하는 것 역시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제가 모험을 좋아했던 건 본능적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이상하게 모험하고 어딘가 여행하는 걸 어려서부터 굉장히 좋아했어요.”
하지만 자신이 안정적인 생활이 아닌 정확히 ‘모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다큐멘터리 PD생활을 하던 30대 후반 시절의 일이다. 장기 체류를 하던 뉴질랜드에서 다른 사람이 부러워 할, 수영장도 있고 넓은 정원도 있는 집을 구입해 6개월여를 살던 그는 한 곳에 매인 그런 생활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겹더라고요. 그래서 모험적인 취재활동을 다시 시작하니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남 보기에 좋은 삶이 나의 행복한 삶은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는 모험하는 제 인생에 주저 없이 뛰어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 도전과 모험은 나의 인생… 요트 항해에 푹 빠져버리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부터 아웃도어 활동을 좋아했던 김승진 선장.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굉장히 주도적으로 학교 친구들을 이끌고 캠핑을 즐겼다. 그리고 대학 시절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통해 비로소 훗날 요트로 이어질 해양을 향한 관심이 시작됐다. 전국대학연합잠수회에 가입해 활동을 했을 정도로 바다에서의 경험과 모험이 그의 대학 시절을 채웠다. 하지만 그렇게 바다와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냈으면서도 요트는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물건으로만 생각했다는 그다. 김 선장이 요트에 관심을 갖게 되고 푹 빠져버린 것은 역시 PD일을 하던 때의 일이다.
“다큐멘터리 일을 하다 보니 외국으로 출장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러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요트를 봤는데 갑자기 뭔가가 확 오더라고요 ‘아, 이제 요트는 내 거다’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갑자기 제 물건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거예요. 그 때부터 요트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최신 지식과 관련 정보를 알기 위해 외국 요트 잡지를 구독하고 인터넷 서핑을 통해 요트를 배웠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값비싼 요트를 구입하진 못 하고 대신 모터보트를 한 척 구입해 바다를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바다를 익히고 배라는 것을 몸으로 익혔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0년, 그와 함께 세계 일주를 성공한 요트인 아라파니를 크로아티아에서 구입해 직접 운행해 우리나라로 끌고 왔다. 김승진 선장의 첫 요트이자 첫 대양 횡단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벌써 그의 마음속에는 무원조·무기항 세계 일주의 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아라파니가 세계 일주가 가능한 배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안 했대요. 조금 약하게 만들어진 배라고들 생각했나 봐요. 그런데 저는 이 배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해 냈고요.”
세계적으로도 요트로 무원조 무기항 세계 일주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단독 세계 일주는 더더욱 드물다. 프로페셔널 항해가들 여럿이 요트 한 대에 타고 4년에 한 번씩 진행되는 세계 일주 대회에서도 성공률은 50퍼센트가 되지 않는다. 지난 대회에서는 출항했던 30척의 배 가운데 돌아온 배는 11척에 불과하다. 심한 경우에는 30척 중 4척만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전체가 돌아온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실패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바로 요트의 기계고장이다.

- 공구 전문가 김승진 선장, 항해의 시작부터 끝까지 공구로 수리

세계 일주를 목표로 출항한 김승진 선장의 머릿속에는 항해 중에 있을 모든 역경에 대한 예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배가 뒤집히는 일도 있겠구나 예상했는데 실제로 그런 일도 벌어졌고 세 차례에서 다섯 차례 정도는 태풍을 겪겠구나 싶었는데 역시 두세 차례의 태풍을 경험했다. 또 무풍지대에서 하루 이틀 발이 붙잡힐 거라는 예상도 그대로였다. 다만 한 가지 짐작을 벗어난 것이 있다면 바로 장비의 고장이었다.
“고장이 발생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항해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장비고장이 일어났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고장이 굉장히 많았고 심했어요. 제발 치명적인 고장만 일어나지 말라고 빌었는데 그런 고장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마다 제가 고쳐야 하는 거였죠. 바다 한가운데서는 누구에게도 도움 받을 수 없으니까요.”
아라파니호 선체의 모든 보관함에는 공구가 한가득 실려 있다. 의자 덮개를 들어 봐도, 벽면의 나무 보관함을 열어 봐도 선체 내 거의 대부분의 공간은 공구로 가득하다. 기본적인 볼트 너트는 물론이며 펜치, 렌치, 톱, 도끼, 드릴, 샌딩페이퍼, 하다못해 바이스와 절단기, 컴프레서까지 실려 있지 않은 공구를 찾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저는 대부분의 공구를 아마 다룰 줄 알 걸요?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죠. 공업적인 전선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보다도 제가 더 많은 종류의 공구를 다룰 줄 알지도 모릅니다. 그 분들은 한쪽 공구 분야에서 전문가이지만 저는 모든 분야를 다 알아야 하니까요.”
김승진 선장은 그 자신의 말 그대로 공구 전문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 공부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공구를 익히고 공구를 이용해 물건을 수리한 경험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중학교 무렵 기술 시간에 라디오 키트를 조립하며 납땜과 저항을 배웠으며 대학 시절 전공이었던 미술, 그 중에서도 조각을 공부하며 사용하는 수많은 장비들을 수리하며 공구를 익혔다. 또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는 밤새 고압 컴프레서로 공기를 충전해 낮에는 다이빙하는 생활을 즐겼다. 어린 시절부터 익혀 온 공구에 대한 익숙함이 세계 일주 성공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요트는 모든 공구가 필요한 레포츠…

- 공구 없이는 무원조·무기항 세계 일주 불가능한 것

209일간 아라파니호에 일어난 수많은 장비 고장을 김승진 선장은 혼자서 전부 고쳐냈다. 그 가운데서는 무전기로 지켜듣고 있던 모두를 놀라게 한 수리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남극해에서의 풍력발전기 수리다. 내내 구름이 끼어 있어 태양광이 부족한 남극해에서 풍력발전기의 고장은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선장은 어떤 고장에도 겁먹지 않고 왜 고장 난 것인지 관찰에 몰두한다. 고장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까지 70%의 시간을 소비하고 수리하는 데 30%의 시간과 열정을 소비한다는 것이 김 선장의 수리철학이다. 살펴보니 거친 남극해에서 몰아친 폭풍 때문에 터빈이 과하게 빨리 돌아 풍력발전기 내부의 기어가 뭉개진 것이 고장의 원인이었다. 고장 원인을 찾아낸 선장은 뭉개진 기어를 빼 내 남아있는 기어 잇몸을 쇠톱과 줄로 하나하나 깎아 수제 기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스테인리스 와셔 두 장을 끼워 기어의 높이를 맞췄다. 그렇게 고장 났던 풍력발전기는 선장의 힘으로 고쳐져 다시 온전히 돌아갔다.
“육상지원팀에 무전으로 고쳤다고 하니까 세상에 맥가이버냐고 놀라더라고요. 아무도 고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대요. 저도 처음 써 보는 기계였으니까요.”
또 돛을 감는 펄링이 부러졌던 것도 항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심각한 고장이었다.
“처음에는 대충 고쳤어요. 그런데 또 부러진 거예요. 그래서 더 이상은 안 부러지게 튼튼하게 고쳤죠.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잘라 펼쳐서 부목처럼 만들었어요. 망치로 두드려서 모양에 맞게 성형을 하고 구멍을 뚫어 리벳팅 하고 볼트를 박아버렸죠. 고장났던 다른 부분은 항해 마치고 나서 다 원상 복구 시켰는데 펄링만 제가 고친 그대로 놓아뒀어요. 그만큼 지금까지 튼튼하게 써먹고 있습니다.”
도구를 이용해 자연을 즐기는 레저스포츠. 도구는 반드시 고장이 나거나 수리가 필요한 경우가 찾아온다. 특히나 요트는 그 중에서도 절정이다. 엔진부터 시작해 컴퓨터, 전기·전자, 목공에 FRP(플라스틱), 금속까지 전부 들어있는 것이 요트다. 게다가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수리공을 부를 수도 없다. 그만큼 그것들을 수리할 수 있는 다양한 공구들과 공구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 바로 요트인 것이다. 그런 공구와 기술이 김승진 선장에게는 있었다.
“만약 저에게 공구들이 없었고, 제가 공구를 사용할 줄 몰랐다면 세계 일주는 단연코 불가능했을 겁니다.”

- 누구든 모두 다 모험하고 있다 생각해… 세계 요트계의 독보적 일인자 되고 싶어

자신을 ‘해양모험가’라 지칭하는 김승진 선장은 자신 뿐 아니라 세상의 모두가 모험을 하고 있다 말한다. 자신이 지금껏 해온 것처럼 인생을 걸 만큼 격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만이 모험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도 다들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것이 모험인 것 같습니다. 직장 내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것도 모험이라고 생각하고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것도 모두 모험이겠죠. 공구상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매출을 높이기 위해 하는 다양한 활동들, 이런 모든 것들이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처럼 인생의 커다란 도전을 망설이고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때를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싶다 전한다.
“내가 하고 싶은 어떤 것이 있다면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신의 목표나 꿈이 바로 실현될 수 있는 상황은 쉽게 찾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그 순간이 찾아왔을 때 정말로 실현할 수 있을 만한 개인의 능력을 길러두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기회가 왔을 때 결코 놓치지 않을 겁니다.”
세계 일주를 멋지게 성공해 낸 김승진 선장에게는 다큐멘터리 PD를 하며 익힌 비디오카메라 촬영도 능력 개발의 일환이었다. 현재 TV에서 방송된 그의 항해를 담은 다큐멘터리의 영상은 전부 김 선장 자신이 직접 촬영한 것이다. 항해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까지 한 편 촬영했으니 이보다 성공적인 장사가 또 있을까?
209일간의 세계 일주를 ‘모험이 아닌 일상’이었다고 말하는 김승진 선장. 그는 험한 항해를 마치고도 여전히 도전할 목표가 남아있다고 한다. 환갑 전에 세계에서 독보적인 요트계의 일인자가 되는 것. 구체적인 계획은 세계대회 우승이다. 뱃속에 공구를 가득 채운 바다달팽이 아라파니호를 타고 조급하지 않지만 꼼꼼하게 목표를 달성할 김승진의 모습을 응원한다.

20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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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해 온 취재 가운데 가장 재미있던 취재 경험이었다. 취재 갔던 날은 아직 봄이 오려면 한참이나 먼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햇살이 너무나 좋아서 취재가 아니라 봄 소풍 가는 기분이었달까. 게다가 경남 통영의 요트 정박장에서 김승진 선장의 요트에 타고 40분간 잔잔한 바다를 항해해 한산도(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의 무대가 되었던 섬)까지 가는 그 시간은, 정말 ‘아, 사람들이 이래서 요트를 타는구나’하는 생각이 피어나는 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을 정도로.

하지만 그 날의 취재가 멋졌던 진짜 이유는, 김승진 선장님이라는 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바로 그것이었다. 선장님을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추석 연휴 내려간 고향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던 선장님의 다큐멘터리(MBC 다큐스페셜 675회-지구를 사랑한 남자, 209일 간의 항해기록)였다. 그 모습에 반해 회사로 돌아와 취재 기획안을 제출했고, 계속 미뤄져 오다가 1월에야 승인이 떨어져 곧장 연락해 달려갔다. 그리곤 선장님을 낮 열두시에 만나 오후 여섯시까지 취재했지. 그 시간이 너무 재미있어서. 정말 열심히 질문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여섯 시간의 취재는 사실 취재원에게 너무나 큰 부담을 주는 것이었을 텐데도, 전직 다큐멘터리PD였던 선장님은 미안해하는 나에게 자신도 다 안다며, 미안해 할 것 없다고 웃어주실 뿐이었다. 어둑어둑해지는 바다 위에서 말이지. 또 선장님은, 이렇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기자(혹은 PD)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말씀도 들려 주셨다. 나 역시도 그 말에 완전 동감하는 바다.

선장님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모습과 정말 똑같았다. 외모부터 말투, 말의 속도, 이야기하는 표정 모든 것이 전부. 정말정말 솔직한 사람이었고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기사에도 적은 이야기이지만, 선장님은 ‘모험가’로 태어난 사람이었다. 안정된 생활을 못 견뎌하는 사람. 대학 시절, 당시만 해도 비자가 풀리지 않아 일반인들은 갈 수 없던 중국을 친구들과 함께 어떻게든 가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해 왔고, 또 사막에 가서는 모래 언덕 위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인생 최고의 환희를 느꼈으며, 대학을 졸업해 다큐멘터리 PD를 직업으로 택해 온갖 오지를 탐험하며 인생을 살아 왔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라움과 감탄보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몰려오는 부담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모험가가 아닌 사람이다. 정말로.

또 이 날은 착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점에서도 좋은 날이었다. 취재 시간 내내 그 아이처럼 어린 웃음을 지으시며 이야기를 들려준 선장님도 착한 사람이고, 그 날 취재에 함께 갔던 사진작가 이진하씨도 착한 사람이었다.
이진하씨는 이 날 처음 만난 사진작가 분인데, 취재 며칠 전 전화로 서울에 있는 그에게 완전 끝에서 끝인 경남 통영에 사진 촬영하러 와 주실 수 있냐는 요청에 흔쾌히 응해 줬다. 아마도 그냥,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와 줬던 것 같다. 서울에서부터 여섯 시간이나 차를 운전해 오면서 말이지…. 나는 이진하씨만큼 사진을 ‘열심히’찍는 작가를 처음 봤다. 사진 촬영비를 많이 드린 것도 아닌데도 오랜 시간 촬영해 준 그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깜깜한 도로 위에서 (그의 차를 빌려 타고 같이 서울로 가고 있던 나에게) 오늘의 인터뷰와 촬영이 재미있었다고 말해 줬다. 참으로 고마운 말이었다. 또 여섯 시간이나 서울로 운전해 가면서. (사실 보조 사진작가도 한 명 따라와 번갈아가며 운전을 했다.)


나는 정말 어딘가에 간다는 것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혼자 가는 여행은 훨씬 더 그렇고. 혼자서 어딘가에 여행을 가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기자 생활을 하면서 혼자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때로는 배를 타기도 하며 전국을 다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조금씩 혼자 하는 여행의 매력이 뭔지를 알아 가는 것 같다. 게다가 그렇게 여행 간 곳에서 김승진 선장님처럼 멋진 분들을 만날 수도 있으니.


+
종이로 출간되는 잡지인데 웹진으로도 볼 수 있으니 사진이 궁금한 사람은 여기( http://toolmagazine.kr/webzine/sub/search_view.jsp?wz=138&bid=1&col=&sw=&pg=1&num=575 )로 가면 됨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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