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 bar.


total : 251, page : 1 / 8, connect : 0 login  join
      view article 2017/05/14  
         name          이대
subject 김천역 뉴욕제과점은 진작에 사라졌지만

김천역 뉴욕제과점은 진작에 사라졌지만


서른이 넘어가면 누구나 그때까지도 자기 안에 남은 불빛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게 마련이고 어디서 그런 불빛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한때나마 자신을 밝혀줬던 그 불빛이 과연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알아야만 한다. 한때나마. 한때 반짝였다가 기레빠시마냥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 불빛이나마. 이제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불빛이나마.

김연수, <뉴욕제과점> 中


-
2005년 12월의 일이다, 내가 뭔가를 그러니까 좀 긴 뭔가를 써 보기로 마음먹었던 때는. 인터넷도 되지 않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지도 않았던 그 시기 그 방에서 나는 온통 혼자서 책을 읽고 뭔가를 썼다. 가장 먼저 읽기 시작했던 작가는 김연수였다. 어째서 김연수를 읽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라디오 때문이라 답하겠다. 당시 돌고래가 빌려준 ‘핑키’라는 이름의 주황색(핑크색이 아니다. 주황색이다) 라디오로 나는 아침저녁마다 KBS 1fm을 듣곤 했는데, 하루는 저녁 시간의 방송에서 진행자는 김연수의 이야기를 들려 줬다. 매일같이 천 배(千拜)를 하고, 운동장을 달리고, 모든 시간을 쏟아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단 하루라도 그것을 중단하게 된다면 그 날 죽어버리겠다는 마음으로 가방에 칼을 가지고 다녔다는 그의 이야기를.
아마도 그날 나는, 김연수를 읽어야겠다 생각했던 것 같다.

가장 먼저 읽은 김연수의 책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다. 그때 읽었고 지금도 갖고 있는 그 책은, 실은 둘째삼촌의 책꽂이에서 몰래 뽑아 온 책인데 그나저나 삼촌은 왜 그 책을 갖고 있었을까. 김연수의 다른 책은 한 권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하필이면 왜 그 책을. 모르긴 몰라도 분명한 것은, 삼촌이 그걸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진작에 김연수에게 질려 버렸을 거라는 사실이다. 김연수 독서의 첫 책을 당연한 것처럼 그의 데뷔작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부터 시작했더라면 말이다. 무척 다행스럽게도 그러지 않았던 덕에, 지금 나는 김연수의 팬이 될 수 있었다.

-
누군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한국 작가를 묻는 질문에 대답하는 김연수라는 작가의 고향이 김천시라는 건 그의 단편소설집에 실린 <뉴욕제과점>이라는 단편을 통해 진작에 알고 있었다, 라는 문장을 세 단어로 줄이자면 김연수의 고향은 김천시다.
2005년 12월 서울의 자취방에서 그의 소설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김천이라는 지명은 나에게 멀고 먼 상상 속의 공간에 가까웠으며 그 곳에 간다는 건 차라리 도쿄나 홍콩에 가는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김천시가 현실의 공간으로 내려온 것은 내 생활 공간이 대구로 바뀐 이후부터다.

서울에서 KTX열차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모든 열차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구에 닿기 직전 김천/구미역에 정차할 때가 있다. 역에 다다르는 열차 내 스피커에서 잠시 후 김천/구미역에 도착합니다, 라는 방송이 흘러나올 때마다 나는 김연수를 떠올리곤 한다.
김천/구미 KTX역과 김천역은 엄연히 다른 역이지만, 그래도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를 타고 40분 남짓이면 닿는 그런 김천역에 대구에 내려온지 2년 가까이 되어가는 얼마 전까지도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무슨 김연수의 팬이라고, 흥’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대상의 모든 것을 알기 두려워하는 팬의 마음에서라고 변명을 해 보겠다.

-
그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29일, 김천역에 다녀왔다. 오전 ITX-새마을호를 타고 가면서 열차 안에서 정말정말 오랜만에 <뉴욕제과점>을 다시 읽었다. 대구에서 김천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인지, 열 세 장의 소설을 다 읽지도 못했는데 벌써 김천역이었다.
이미 뉴욕제과점은 1995년에 사라져 버렸다고 김연수는 책에 적어두었지만 그래도 역전파출소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짐작컨대 아마 여기가 뉴욕제과점이었을 것 같다, 싶은 건물도 보였다. 그 곳에 지금은 돈까스집이 자리잡고 있었다.

두려운 마음에도 김천역을 방문하게 됐던 건 민지의 동료였던 나래씨 덕분이다. 이직한 기획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김천시의 홍보 책자를 만들기 전, 사전조사 겸 봄소풍 겸 민지와 김천시를 방문했고 나도 거기에 동참했던 것이다. 시의 한 캠핑장으로 운전해 가는 차 안에서 나래씨는 김연수의 인터뷰 기사도 홍보 책자에 삽입할 계획이 있다며, 만약 섭외가 가능해 진다면 나에게 김연수의 인터뷰 기사를 써 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줬고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김연수의 인터뷰를 하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그동안 김연수와 그의 책에 관해 내가 썼던 글을 전부 프린트해서 김연수 작가에게 드려야지, 하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정말 꿈 같은 일일 테다.





prev

3월 두번째 주 정리

이대  

back

해양모험가 김승진 선장 인터뷰

이대  

list reply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Neotu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