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 bar.


total : 251, page : 1 / 8, connect : 0 login  join
      view article 2018/03/28  
         name          이대
subject 이충걸이라는 이름

이충걸이라는 이름


1.
이충걸이라는 이름을 맨 처음 접했던 건 중학생 시절의 일이다. 당시 구독하던 잡지 페이퍼(PAPER)의 끄트머리를 매달 장식하던 <소설 아닌 소설> 혹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라는 코너명의 짧은 소설 네 페이지. 어린 마음에 쉼게 이해되지 않는 다 큰 어른의 감정들로 채워져 있던 그 네 페이지 글의 필자명으로 이충걸이란 이름과 처음 만났다. 평범하지 않은 그의 이름에 호기심이 생겨서였을까, 아니면 분명 100%의 감상은 불가능했을 글에 이끌려서였을까. 까까머리 중학생 나는 컴퓨터를 켜 한글 워드 프로세서를 실행하고는 그 네 페이지의 글자를 한 글자 한 글자 모니터에 타이핑했다. 그렇게 책자 한 페이지당 워드 문서로도 약 한 페이지 가량 된다는 것을 확인한 후 ‘워드로 네 페이지 정도 분량이면 한 편의 글이라 불릴 수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한동안 잊고 있던 그의 이름과 다시 만난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지내던 학교 기숙사 같은 방 선배의 책상 서랍에 들어 있던 GQ korea라는 잡지에서다. 이번에는 끄트머리가 아니라 책의 첫머리, Editor’s Letter에서 다시금 그를 만났다. 결코 한달음에 쉽사리 읽히지 않고 가만 가만 곱씹어가며 주의 깊게 읽어야만 하는 문장들의 하단에 적혀 있던 Editor in Chief 편집장 이충걸. 그의 이름과 재회한 그 날 이후 나는 가난한 어린 대학생 신분에 어울리지도 않는, 명품들로 가득 채워진 남성지 GQ를 매달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2.
여의도 잡지교육원에서 기자 교육을 받던 3개월의 시간 가운데 어느 날의 일이다. 수업을 맡고 있던 최옥선 전 주부생활 편집장님은 반에 있던 30명가량의 교육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중에서 무슨 잡지든 잡지 한 권을 맨 첫 페이지부터 맨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페이지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읽어 본 사람 있어? 있으면 손들어 봐.” 그 때 손을 들었던 건 나, 그리고 누구더라? 어쨌든 또 한 명. 이렇게 둘 뿐이었다. 내가 맨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페이지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읽었던 잡지가 GQ다. 대학생 무렵 나는 그렇게 GQ를 읽으며 중학생 시절부터 갖고 있던, 뭔가 글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싶다는 막연하기만 했던 꿈을 구체화시켜 잡지기자라는 꿈을 키워 나갔다.

2012년의 어느 날, 논현동의 두산빌딩에 찾아간 적이 있다. 두산매거진에서 발행하는 GQ의 사무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저 무작정 찾아가서 1층 안내 데스크의 누나에게 지큐 편집장이신 이충걸씨와 만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어떤 일로…? 하고 묻는 누나에게 지큐에서 일하고 싶어서요, 라고 말했더니 누나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고는 어쨌든 전화를 걸어 얼마간 이야기를 나누곤(혹시 약속 하시고 오신 거세요? / 아니요) 잠깐 기다리라고 말했다. 잠시 후 누군가가 내려왔고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휴게실에서 잠깐 앉아있으라는 말을 듣고 잠깐 앉아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게실로 왠지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들어오길래 누구더라? 하고 잠깐 떠올려 봤더니 몇 번 사진에서 봤던 이충걸 씨였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며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꺼낸 나에게 이충걸 씨는, 무척이나 여성스럽고 섬세한 목소리로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당연하겠지만 그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거였다.
텅 빈 커다란 회의실로 나를 데려간 그와 30분쯤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도 그는 모험적인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계속되고 있는 회의 가운데에서도 틈을 내 나를 한 번 보러 왔다고. 준비해 갔던 아홉 편의, 나름 포트폴리오 형식의 글을 보여 주었고 그는 속독으로 읽었다. 다 읽고 나서 그가 했던 말은, 대훈 씨는 작가에 더 가깝네요, 하는 말이었다. 물론 나는 오해 없이 들었다. 그의 그 말은, 내가 작가 수준의 글쓰기 능력이나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나는 잡지사에서 필요로 하는 에디터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면 잡지와는 별반 관계가 없는) 작가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만약 내가 몇 가지의 GQ에서 다룰 만한 주제를 생각해서 설정하고, 그에 대한 글을 가지고 왔더라면 (채용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내가 가지고 간 것들로는 그런 생각을 하기 어렵다고. 그리고 인사해 주었다, 다음 번 볼 때는 좀 더 이름 있는 사람이 되어 있길 바란다며.

3.
이충걸 씨가 GQ 편집장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난 3월 6일, 3월호 GQ를 펼쳐 에디터스 레터를 읽던 와중의 일이다. 창간호부터 무려 17년 동안 맡아 오던 편집장이라는 자리에 남긴 작별 인사와도 같은 글에서 그의 떠남을 알게 됐다.
그간 이충걸이라는 이름의 지문이 진하게 배어 있던 남성지 GQ에는 2018년 4월호부터 새 편집장이 들어섰다. 이제 GQ는 그래도 편하게 읽히는 에디터스 레터를 쓰는 새로운 편집장의 시대를 시작했고 이충걸 역시도 전혀 달라진 삶을 시작했을 것이며 그래도 찾아온 새봄은 꽃냄새를 펼치기 시작했지만 맥도날드는 맥올데이를 시작했으니 나도 이제 뭔가를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저녁이다.





prev

3월 마지막 주, 4월 첫번째 주 정리

이대  

back

3월 두번째 주 정리

이대  

list reply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Neotu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