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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13/05/03  
         name          이대
subject 마흔 발자국의 걸음

마흔 발자국의 걸음


하루키는 한 수필에서, 인생이란 시계의 증가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한 적이 있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언젠가 빨간 동그라미 게시판에, 자란다는 것은 어쩌면 눈을 감은 채로 걸어갈 수 있는 발걸음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지도 모른다, 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2006년에 썼던 글이다. 그리고 그 글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이어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눈을 감고 다섯 걸음 이상을 걷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어딘가에 부딪힐 것 같고 어딘가에 걸려 넘어질 것만 같아서 대여섯 걸음을 걷고는 나도 모르게 눈을 떠버리곤 했다. 지금의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열 두 발자국을 걸을 수 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열 다섯 발자국까지도 걸을 수 있다. 나는 어쩌면 일년 새에 일곱 발자국 정도만큼 자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 시기로부터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침에 과연 지금의 나는 몇 걸음이나 걸을 수 있을까, 그 때보다 몇 걸음 만큼 더 자랐을까 싶어 눈을 감고 걸어 보았다. 놀랍게도 마흔 발자국의 걸음을 옮길 때까지 별다른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흔 두번째 발자국에서야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나는 경험했던 큰 경험 이후, 분명 내가 무척이나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건 어쩌면, 과장된 표현이고 주제넘는 표현이라 생각하긴 하지만, 생에 대한 집착이 조금은 줄어든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경험 이전까지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죽음은 나에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었으며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이전의 나는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 많고 이렇게 즐길 게 많은 세상인데 왜 하필이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까. 하지만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어도 삶을 사는 것이 정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사람들, 죽음과 별반 다를 것 없겠다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존재하는 법이었다. 지금의 나는 세계가 내일 멸망한다고 해도, 내일 내 목숨이 끊어진다고 해도 그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두려움은 별반 없다. 어떻게 죽는가, 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있지만 정작 죽음 그 자체로부터 느껴지는 아쉬움이나 불안은 없단 말이다. 눈을 감고 걸어가는 걸음에서 어딘가에 부딪힘과 걸려 넘어짐이 별 상관 없는 것처럼.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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