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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13/05/18  
         name          이대
subject 연극 해변의 카프카

연극 해변의 카프카


며칠 전(5/14) 동숭아트센터에서 본 연극 <해변의 카프카>. 원작의 감상을 망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볼까 말까 망설이고 있던 작품이었는데, 하루키 소식을 듣기 위해 종종 방문하곤 하던 쿨사이다님 블로그에서 좋았다는 감상글을 읽고는 보기로 결정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대만족이었다.

연극을 관람하며 했던 생각들을 종합해 보자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 (1) 하루키에게 미안하다, (2) <해변의 카프카>는 어쩌면 연극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겠구나
이 두 가지 생각으로 종합한 감상글을 적어 보려 한다.

1. 하루키에게 미안하다

멜로디적 글은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운드적 글은 무릇 여러 차례 반복해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해 왔다(172번 게시물 <멜로디적 글쓰기와 사운드적 글쓰기>참조). 매번 읽을 때마다 이전의 독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혹은 이해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상과 해석이 느껴지고 떠오르기 때문이며, 그래야만 작품의 백 퍼센트 감상에 조금씩이나마 다가갈 수 있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가진 독서의 목표이기도 하다.
사운드적 글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 역시 두말할 것 없이 그렇다. 작년 여름, 나는 하루키의 소설들을 다시 한 번 읽어나가던 가운데 이만 하면 충분히 이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무려 하루키에 대한 원숙한 감상자가 되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연극 <해변의 카프카>를 보고 있자니 그런 내가 너무나 부끄럽더라. 책을 읽으면서는 해보지 못했던, 작품에 대한 새로운 감상과 이해가 연극 관람 내내 쏟아졌다. 어쩌면 연극과 문학을 감상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한 결과였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먼저 말하자면 까마귀 소년에 대해 이루어진 새로운 감상과 이해가 사실 좀 놀라웠다. 몇 차례고 책을 읽을 때는 언제나 까마귀 소년이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관점에서 느껴지곤 했다. 그의 딱딱하고 건조한 말투 때문인지 아니면 ‘까마귀’라는 객체가 풍기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작품 안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해와 감상은 그렇게 달랐다. 그런데 연극에서는 까마귀 소년의 긍정적인 측면이 별반 그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책의 말미 조니워커를 공격하는 장면이 연극에서는 그려지지 않았다) 그가 긍정적인 위치에서 카프카 소년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책에서는 까마귀 소년이 작품의 처음 그리고 마지막에서만 집중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작품을 읽어 나가는 중간에서는 언제나 까마귀 소년을 배제한 상태에서 감상하게 마련이었는데 연극의 무대 위에서 대사는 없더라도 항상 어딘가에 서 있는 까마귀 소년을 보자 ‘아, 까마귀 소년은 언제나 카프카 소년과 함께 있는 것으로 이해했어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앞으로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카프카 소년을 지켜보고 있는 까마귀를 떠올릴 듯 하다.

그리고 책으로 읽을 때는 각 장마다 번갈아 카프카 소년과 나카타상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그 둘의 이야기를 동일 선상에서 겹쳐 감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연극에서는 달랐다. 나는 이게 소설 <해변의 카프카>와 연극 <해변의 카프카>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은데, 연극에서는 동일 선상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연출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새로운 감상과 이해가 휘몰아쳤다.
카프카 소년과 나카타상의 이야기가 가장 효과적으로 겹쳐져 보여진 장면은 바로 성교(性交)장면이라 생각된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 과연 성교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까 싶기도 했는데 버릴 것도 모자랄 것도 없이 연출되었고 연기하더라. 그리고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연출이었던 건 둘의 이야기가 겹쳐져 보여지는 장면을 무척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거였다. 카프카 소년과 사에키상의 성교, 그리고 커넬 샌더스에게 소개받은 여대생과 호시노의 성교를 동일 선상에 올려두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 혹은 이해했어야 한다는 것은 책으로 읽을 땐 짐작하지 못했던 거였다. ‘아니 뭐야, 그건 책으로도 뻔히 짐작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하신다면, 그러니까 제가 하루키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2. 연극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작품 <해변의 카프카>

연극을 관람하고 있던 도중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해변의 카프카>는 연극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장면은 오시마상과 카프카 소년의 몇 차례 대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에서 조금 더 들어가 생각해 보자니 그보다 더한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를 다룬, 고대 그리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해변의 카프카>는 고대 연극의 극본이었던 작품의 특성을 그만큼 충실히 담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 특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는 그야말로 연극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의 발단인 오시마 상 그리고 카프카 소년의 대화 장면에서 오시마 상이 들려 주는 그리스 철학자의 이야기를 몇 차례 듣고 있자니 정말로 내가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더라. 그리스의 원형극장 관객석에 앉아 무대에서 펼쳐지는 장면, 델포이의 신탁을 받고 있는 라이오스 왕의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책에서는 문장으로만 읽어야 했던 사에키상의 노래 <해변의 카프카>를 직접 귀로 듣고 있자니 마치 신탁을 읊는 듯한 느낌에 온몸에 전율이 일기도 했고.

것도 그렇고 시간적인 측면에서도 그리스에서는 관객의 집중을 위해 한밤중에 연극을 했다고 그리고 지금도 한다고 하는데, 딱 어두컴컴한 저녁 시간에 보았던 연극 <해변의 카프카>는 연극으로 표현된 작품이 무척 잘 어울렸다.


+
덧붙여 말하자면 운 좋게도 VIP석에서 볼 수 있어 관람을 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 하에서 볼 수 있었는데, 연극이 시작하고 처음 등장 인물들(까마귀 소년, 카프카, 나카타 상, 고양이들)을 마주하니 괜시리 떨리더라.

그리고 이건 책으로 읽을 때와 마찬가지였는데, 나는 어쩐지 소설과 연극 속에서 주인공인 카프카 소년보다 다른 인물들, 다시 말해 나카타 상 오시마 상 호시노 등이 훨씬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인물들로 느껴졌다. 책을 읽을 때나 연극에서나 카프카 소년은 왠지 그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중간 중간의 말뚝처럼만 느껴졌고 인물에 대한 애정이나 할 것들은 별반 느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 오시마 상의 별장과 숲에서 이어지는 또다른 세계도 그곳에서 펼쳐지는 카프카 소년의 이야기보다 그저 그 장소들이 좋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금은 신기한 일이다, 좋아하는 작품 속에서 주인공에 대해 별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니. 나카타 상도 따지고 보면 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그럴 수 있는 건가?

마지막으로 연극에 대해 말해 보자면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도 감상에는 별 문제가 없을 듯 싶다. 다만 하루키 소설 특유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설명하기가 불명확한, 바꿔 말하자면 굉장히 모호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 내용을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인 ‘제한된 시간’ 안에 감상해야 한다는 건 책을 읽지 않은 감상자의 입장에선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싶다. 그리고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사에키상과 카프카가 대체 왜 사랑에 빠진 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듯도 싶고.

원작을 망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은 전혀 필요 없는 걱정이었긴 한데, 연출자는 소설 <해변의 카프카>를 연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창조’했다기보다 연극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감상’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원작에 대한 굉장한 이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두 시간 반이 넘는 상연 시간은 굉장히 빨리 지나갔다.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다. 두 권의 책 내용을 160분이라는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집어넣었다는 느낌이다.




Coolcider 2013/05/19  delete

맞아요. 카프카소년과 사에키상, 호시노상과 콜걸과의 섹스 장면 같은 경우에는 저도 신선했어요. 각색이나 연출자가 새롭게 '감상'한 것 같다는 의견에 동감합니다. 리뷰 잘 봤어요~:)

이대 2013/05/19   

옹 동감하셨다는 말씀 정말 감사하네요- 그쵸? 분명 그런 느낌이었어요. 참 제대로 된 감상자가 연극을 만들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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