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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06/07/09  
         name          이대
subject 논산에서의 4주, 천안에서의 4주 – 논산에서의 4주 (1)

논산에서의 4주, 천안에서의 4주 – 논산에서의 4주 (1)


논산에서 보낸 4주라는 시간 속에서,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은 대부분 열 통 남짓한 편지에 기록되었다. 별로 편지를 안 쓴 것 같았는데, 28일 동안 열 통을 썼으니 3일에 한 통 꼴로 편지를 쓴 모양이다. 이렇다 할 개인 시간이 주어지지 않던 속에서 어떻게든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편지를 썼다. 주말 종교활동 시간에, 야간 불침번을 서며, 취침시간 옆 전우의 라이트펜을 빌려 침낭 속에서 그렇게 편지를 썼다. 그냥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나에 대해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굳이 그런 때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전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묘한 종류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같은 내무실을 쓰는 친구들과 나누는 담소 말고는 여가활동이랄 것이 전혀 없는 그 속에서 편지쓰기란 또한 굉장한 여가활동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집에서 가져간 편지지 한 묶음과, 훈련소에서 나누어 준 편지지 한 묶음에 담겨 논산에서의 4주 생활은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그 편지지들에도 다 담기지 못한 기억들이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부터 그런 기억들을 정리해 보려 한다.



2006년 4월 6일, 논산 훈련소에 입소했다.

논산 훈련소의 넓은 운동장 스탠드는 입소하는 아들과 함께 온 부모님들과 형제 혹은 친구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나 역시 부모님과 함께 그 무리 가운데에 섞여 앉아 있었고 내 오른편에는 효섭이와 효섭이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스탠드 천장에 달린 텔레비전에서는 흐릿해 잘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작아 잘 들리지도 않는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었다. 날씨는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그런 날씨였다.
그렇게 앉아 20분쯤 기다렸을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에 따라 함께 왔던 부모님과 헤어져 운동장으로 걸어나갔다. 나를 포함한 200여명의 의무소방원들이 운동장에 줄 맞춰 섰고, 그와 비슷해 보이는 숫자의 의무경찰원들도 우리의 왼편에 줄 맞춰 섰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 육군훈련소장의 연설 비슷한 것들이 이어졌다.
별다른 기분은 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무덤덤하게 그 오와 열의 가운데에 서 있었다. 일련의 차례가 모두 끝나고, 우리는 대열 그대로 운동장을 한 바퀴 크게 돌며 부모님, 친구들 혹은 애인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스탠드의 여기저기서 누군가의 이름들이 크게 외쳐졌고 운동장을 도는 대열 가운데에서도 그에 답하는 외침이 이어졌다. 대열에서 아들의 얼굴을 찾아 내곤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부모님들의 모습과 애써 참았던 눈물을 그제서야 훔치는 부모님들의 모습도 스탠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나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부모님의 모습을 찾아보았으나 끝끝내 찾을 수 없었다. 아주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 친지, 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운동장에서 빠져나왔고, 나는 그 때부터 기분이 약간씩 나빠지기 시작했다.
입소대대 앞에 또 대열을 맞추어 앉아,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순서에 따라 한 명씩 한 명씩 앞으로 불려나갔다. 그리고 노란색 병적기록부와 종이봉투를 받아 든 채로 한 명씩 입소대대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조교들의 호통섞인 재촉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맞는 전투복, 전투모, 전투화, 활동화, 슬리퍼, 양말, 속옷, 장갑, 고무링, 세면백 따위를 지급받았다. 우리를 향해 날카로운 목소리로 재촉하는 조교들은 어찌나 두렵던지 옷을 챙기는 내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지급받은 물건들을 커다란 국방색 더블백 안에 담아 1층으로 내려왔고, 스무 명 정도씩 나뉘어 각각 내무실 비슷한 곳 안으로 들여보내졌다. 그 곳에서 간단한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그 때까지도 입고 있던 ‘사복’을 벗고 지급받은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군대에서 사용할 물건을 지급받고 옷을 갈아입는 그 몇 분간의 시간이 논산훈련소 4주 아니, 입대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보낸 12주의 시간 중에서 가장 기분 더러운 시간이었다. 정말 내 22년 인생을 통틀어서도 몇 번 없을 정도의 더러운 기분이었다. 아마도 그제서야 나는 내가 정말 군인이 되었으며 이제 2년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이들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구나 하는 걸 실감하기 시작했던 듯싶다.
갈아입고 벗어 둔 사복과 운동화를 상자에 차곡차곡 담았다. 집으로 보내어질 것이었다. 입대 전 언젠가 소라의 홈페이지에서 본, 소라 동생이 군대에 갔을 때 입대 얼마 후에 집으로 배달되어 온 동생의 옷 상자가 그렇게 씁쓸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상자를 테이핑하며, 이 상자를 받게 될 엄마가 얼마나 또 안쓰러워 하실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몇 주 후 엄마로부터 온 편지에는, 내 옷이 담겨 온 상자를 받고 반가웠다는 엄마의 마음이 적혀 있었다.)

입소대대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전부 지급받은 우리는 더블백을 메고 다시 밖으로 불려나와 대열을 맞추어 섰다. 그리고 또 이동. 입소대대 건물을 지나, 부모님과 인사한 운동장을 지나, 양 옆의 논 사이로 난 길을 얼마간 걸어 이제부터 우리가 정말로 4주간 생활해야 할 27연대의 연병장으로 접어들었다. 그 곳에서 작은 키와 큰 키가 적절하게 섞여 12명 혹은 13명씩 나뉘어졌다. 그 12명 혹은 13명이 4주 동안 같은 내무실에서 생활할 같은 분대원들이었다.

내가 속한 분대는 2소대 3분대였다. 우리 분대는 나를 포함해 12명 이었고 훈련번호는 80번부터 91번까지였다. 나이는 내 나이인 스물 둘이 가장 어린 나이였고 우리 분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형은 스물 여섯이었다.  

훈련소에서 처음 받은 답장의 한 구석에는 군대에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사람들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게 부럽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리 분대 11명의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으며 나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었을까.

80번 송기선. 스물 세살. 무척이나 어려보이는 외모와 작은 체구를 가진 형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도 몇 번이나 나도 모르게 기선아, 하고 부르는 실수를 할 정도였다.
기선이형은 논산 4주 내내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끊임없이 썼다. 영외 훈련을 나가서 중간에 잠시 쉴 때에도 주머니에서 편지지를 꺼내 편지를 쓰곤 했다. 나중에는 편지지가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다며 편지지의 앞 뒷면을 모두 채워 편지를 썼는데 그런데도 훈련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결국 편지지가 떨어져 다른 분대원들에게 편지지를 얻어 썼을 정도였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썼는데 이상하게도 여자친구로부터의 답장은 쉽사리 도착하지 않았다. 한 명 한 명에게 답장이 도착하기 시작하고, 여자친구가 있는 웬만한 아이들은 두 번째 답장을 지나 세 번째 답장까지 받았지만 기선이형의 여자친구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우리 분대원들은 장난스레 그런 기선이형을 놀렸지만 기선이형은 꽤나 심각했나 보다. 말이 점점 줄어들더니 급기야는 중대장 면담 요청까지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다. 그런 며칠 후 드디어 편지가 도착했다. 논산훈련소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우편 시스템 덕분에 편지가 엄청나게 늦게 갔던 것이다. 게다가 두 번째 도착한 편지는 오히려 첫 번째 편지보다 먼저 부친 편지였다. 어쨌든 그 날부터 훈련소 퇴소일 직전까지 기선이형은 하루도 빠짐없는 편지를 받았다.

81번 조수원. 스물 세살. 무척이나 마른 데다가 짧게 깎은 머리 때문에 숱 없는 머리가 도드라져 독거노인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순수하고 구김살 없이 언제나 웃음 가득한 형이었다. 우리 분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형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작은 슈퍼를 하신다. 수원이형은 어머니와 무척이나 친해서, 어머니께 많은 편지를 보냈고 또 많은 편지를 받았는데, 얼핏 본 수원이형 편지의 내용은 부모님께 쓰는 편지가 아니라 마치 친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다. 슈퍼집 아들 수원이 형으로부터 나는 테이핑 되어 있는 빈 종이상자에서 간단하게 테이프를 떼어 내는 노하우를 전수 받았다.
군대에서 보급되는 건빵의 맛에 매료되어 버린 수원이형은 영외 훈련을 나갈 때면 전투복 건빵 주머니에 언제나 건빵을 넣고 다녔다. 순수한 수원이형은 또한 변태이기도 했다. 밤에 취침시간이 되어 소등을 하면 언제나 자연스레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성에 관련된 이야기로 흘러가곤 했는데 그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성에 관련된 이야기의 시작은 언제나 그로부터 비롯되곤 했던 것이다.
수원이형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퇴소 바로 전날 밤이었다. 논산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밤이고 하니 다들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내무실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화장실에라도 다녀오는지 나갔다 들어오는 수원이형이 짧게 투덜거렸다. 그런데 수원이형의 모습이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맨발에 몸에 딱 달라붙는 겨울용 살색 내복만 입은 채로 그 위에는 깔깔이를 입고 나갔다 들어왔던 것이다. 안 그래도 독거노인 같은 수원이형의 모습인데 그렇게 입고 있으니 정말 심했다. 수원이형은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애들에게도 마지막 날이라서 조교가 뭐라고 안하는데 자기는 조교에게 불려갔다며 투덜댔던 것이다. 정말 얼마나 그 모습이 신기했으면 조교가 불렀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82번 김웅걸. 스물 여섯살.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군대에 온 형이었다. 4주동안 우리가 그에게 들은 이야기의 80%는, 말하자면 ‘매춘’에 관한 것이었다. 서울의 어떤 지역이 성매매로 유명한지, 안마방의 서비스별 가격은 어떻게 되는지, 어떤 곳에 가면 예쁜 여자들이 많은지, 심지어 대전에서는 무슨 동이 유명한지까지도 그 형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끊임없이 꺼내어 내는(심지어 전형적인 초등학교 교사의 말투로) 그를 매일같이 보고 있자니 나중에는 성매매가 아무렇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일인 듯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사회’라는 곳에서는 정말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 당연스런 일일까? 저녁식사 자리가 생기고, 술자리로 이동하고, 좀 더 늦은 시간이 되면 성매매를 하러 가는 것이 정말 ‘사회’에서는 이상할 것도 없는 일반적인 일일까? 그래, 양보해서 아무리 그렇다 해도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면 그런 이야기들을 자연스럽다 못해 자랑스럽게,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초등학교 교사라면 대체 무엇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일까. 그의 이야기가 들려 올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청주교대 학생회장 출신이다. 웅걸이형도 여자친구로부터 꽤 많은 편지를 받았다. 웅걸이형의 여자친구는 학생회 활동을 하며 친해졌다는 학교 2년 후배였다.

83번 김연우. 스물 두살. 연우는 입소 초기부터 퇴소할때까지 기침을 달고 살았다. 내무실 내의 공기는 정말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아서 200명이나 되는 6중대의 훈련병들 중에서 목감기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지만, 그래도 연우는 좀 심했었다. 심한 기침을 계속 하다가 2주차의 시작 즈음부터는 가슴 부분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의무병의 말로는 기침이 심해서 폐 쪽 근육에 근육통이 왔다고 한다. 그 때문에 연우는 내 기억 속에 언제나 한 쪽 가슴을 움켜잡고 기침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내 기준으로서는 꽤나 긍정적인 인간형을 지닌 친구였다. 그 때문인지 쉽사리 편하게 대하지 못해 별로 친해지지 못했다.

84번 최승웅. 스물 두살. 아는 것도 많지만 말이 너무 많아 탈인 친구였다. 그의 하루는 언제나 컬트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재미없고 처음 한두번이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지만 계속 듣자면 짜증이 나는) 그런 ‘농담’으로 채워졌다. 주위의 원성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참 굳은 심지로 자신만의 그런 농담을 끊임없이 풀어 헤쳤다.
말했다시피 아는 것도 참 많은 친구였다.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중세시대부터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는 성경책의 종이 측면이 보통 금색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성스러운 책인 성경의 종이에 살균력도 또한 가지고 있는 금속인 금을 입혀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며 옮을 수 있는 병균이나 미생물들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와 같은 말도 안되고 재미도 없고 그냥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라는 걸 알면 나도 모르게 주먹을 힘주어 쥐게 만드는 농담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해 대는 그였다.
심성은 고운 친구였다.

85번 김진호. 스물 두살. 우리 분대에 있던 여섯 명의 서울대생 중에 스테레오 타입의 서울대생의 이미지에 그나마 가까운 친구였다. 진호는 언제나 뭔가를 붙잡고 읽고 있었다. 1988년에 만들어진 고물 텔레비전을 받치고 있는 책꽂이에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좋은생각 류의 책이 월별로 열 몇 권 정도 꽂혀 있었는데 보통은 그 것을 읽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불침번 중에 두어 번 정도 마음의 양식을 주머니에 넣고 나가 읽어 보았다. 마음의 양식을 읽으면서 확실하게 느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글을 써 본 사람만이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의 양식 안에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설가 혹은 시인을 직업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의 글이 실려 있었다. 그리 재미가 없고 뛰어난 구석은 그다지 찾을 수 없던 글들 이었다. 그런데 그 글들을 읽으며, 그 글들이 지금껏 내가 홈페이지의 게시판에 수필이라는 형식으로든, 소설이라는 형식으로든 어쨌든 써 왔던 ‘글’들 보다 (물론 당연하겠지만) 훨씬 더 공들여진 글이고 또 훨씬 더 좋은 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은 내가 ‘글’이라는 종류의 것을 쓰기 전에는 결코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었다. 분명 과거였다면 가볍게 읽어 넘기고 말 그런 글들이었지만, 내가 이전에 써 왔던 글들과 또 그 글들을 쓸 때의 기억들이 남아 있는 현재의 나에게 그런 글들은 분명 과거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글을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어떠한 글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정안이로부터 김인환 교수님도 그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의 양식을 읽으며 ‘과연 그렇구나!’ 하고 체감한 것이다. 나는 작가가 되고픈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분명 제대로 된 감상자이고는 싶다. 책을 단순히 소비하고 마는 소비자가 아닌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감상자이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쓰지는 못하더라도 계속해 글을 쓰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경험이었다.

86번 이대훈. 우리 분대원들이 보는 나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가진, 면도를 하지 않아 콧수염이 좀 자라면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또 머리가 짧은 나는 어떻게 보면 커트 앵글을 닮은, 그런 아이였다.

87번 장재훈. 스물 셋. 2소대 3분대 에로계의 양대 산맥 중 하나. 저 편에 김웅걸이 있다면 이 편에는 장재훈이 있다. 첫 주부터 마지막 주까지, 웅걸이 형처럼 사회생활을 하며 얻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강도 높은 에로에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재수시절과 대학 1,2학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에로에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풀어나갔다. 할아버지는 유명 사립고의 하나인 한일고의 이사장이라고 한다. 머리가 길 때는 몰랐는데 머리를 자른 후에 자신이 만사마를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아무에게도 머리 자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입대했다고 한다.
에로에로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개그를 치는 쪽으로도 머리가 상당히 빨리 돌아가는 친구였다. 84번 최승웅 스타일의 듣는 사람을 허탈하게 만드는 개그가 아닌, 정말 웃을 수 있는 생활 속의 개그를 에로에로 이야기와 그 양을 적절하게 섞어 가며 풀어 내어 84번 최승웅의 개그 때문에 황폐해져 있는 분대원들의 정신을 다시 회복시켜 주곤 했다. 정말 꽤 괜찮은 녀석이었다.

88번 정태현. 스물 넷. 우리 분대의 마스코트를 고르자면 분명 태현이형이 뽑혔을 것이다. 분명 개그류의 캐릭터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예상을 뒤엎는 행동들과 에피소드들로 언제나 분대원들의 중심이 되곤 했다.
어릴 때 미국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왠지 얼굴이라든지 행동이 흑인 삘. 게다가 웬일인지 태현이형이 지급받은 훈련복은 상당히 특이하게 낡아서 태현이형이 입으니 마치 밀리터리 룩을 입은 흑인처럼만 보였다. 미국에서의 생활을 묻는 87번 장재훈의 에로에로적인 질문에, 태현이형은 자신은 보수적이라고 말했지만 마침 고장난 그의 훈련복 바지 지퍼는 무척이나 개방적이라서 왠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임효진과 같은 대일외고 출신. 아버지는 우리 학교 경영학과 교수님. 이름은 까먹었다.
꽤나 존경할만한 인간형이었다. 박학다식하고, 진지할때는 진지하고 편할 때는 편한 사람. 뭔가 모든 면에서 분명한 사람이었다. 미래에 대한 목표가 확실하게 정해져 있으며, 그 목표를 실행하기 위한 계획도 철저하게 짜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도 꽤나 대단했다. 하지만 정태현이라는 인물이 더 대단한 것은 그 인간미였다. 보통 뭔가 ‘완벽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날카롭고 따듯한 인간미가 부족한 그런 이미지이게 마련인데, 태현이형은 완벽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면서도 그 누구라도 그를 싫어할 수는 없을 것만 같은 인간미를 지니고 있었다. 언제나 웃는 얼굴에 밝은 생활 태도를 지니고(밝은 생활 태도란 가벼운 생활 태도와는 분명 다르다)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하든 진지한 자세로 들어주고 대답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감탄할 만 했다. 4주라는 시간은(사실 천안에서도 거의 매일 만났으니 8주다) 한 사람을 알기에 짧은 시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별 다섯 개 만점에 네개 반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89번 김진용. 스물 두살. 의무소방 매니아. 진용이는 의무소방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 예를 들어 소방서에 배치된 후의 생활에 관한 것이라든지, 천안 소방학교에서의 생활이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해 우리끼리 이야기하다가 당연히 결론이 나지 않아 진용이에게 물어 보면 진용이는 언제나 명쾌한 대답을 해 주었다. 의무소방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고 우리가 의무소방 매니아 아니냐고 물을라 치면, 손사래를 치며 자기는 그런 게 아니라며 부정하곤 했지만 의무소방 다음 카페에 합격 후기까지 올렸다는 말에 더 이상 발뺌 할 수 없이 의무소방 매니아로 임명되었다. 그런 진용이가 있어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천안 소방학교 4주 생활과 일선 소방서에서의 생활이 걱정스럽기만 한 우리는 한조각씩의 안심을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안 소방학교에 간 우리는 진용이가 한 말이 대부분 잘못된 정보에 기인한 틀린 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진용이가 하는 말은 거의 무시되기 시작했고 진용이는 점점 말 수 없는 아이가 되었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90번 김덕인. 스물 둘. 84번 최승웅의 개그를 유난히도 싫어하는 아이였다. 승웅이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개그를 하면 다들 그냥 한숨만 포옥 쉬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에서도 덕인이는 언제나 불만을 표출하곤 했다. 관심의 표현이 아니었겠느냐, 하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의 반응은 물론 아니었다.
우리 분대에서 편지를 가장 빨리 받은 친구였고 가장 많은 편지를 받은 친구이기도 했다. 덕인이의 여자친구는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편지를 보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럽다기 보다는 신기했다.

91번 조현우. 스물 넷. 잘생긴 형이었는데 뭔가 양아치 같다는 느낌을 주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쪽으로는 하나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형이라서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후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인상이라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척이나 유리할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분명 잘생긴 형이었다.
인상이 어땠느냐면 가령 이런 것이다. 분대원 중 누군가가 현우 형에게 담배 피우냐고 물어보았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현우형은 피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다들 믿지 않는 분위기. 어떻게 그 인상으로 지금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현우형은 물론 무척이나 억울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자친구와는 무척이나 복잡한 애정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몇 번이고 물어 보았지만 인상만 양아치같을 뿐 사실 그런 쪽으로는 하나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현우형은 자기가 이야기 해봤자 여기서 제대로 들어 줄 사람은 한 명도 없다며 결국 입을 열지 않았다.
현우형은 ‘답이 없어 답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뭔가 어이없는 일을 당했을 때는 어이없어하며, ‘답이 없어 답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웃으면서, ‘답이 없어 답이.’ 어떤 상황에서든 적절한 활용 어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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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에서의 4주, 천안에서의 4주 – 정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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