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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06/07/21  
         name          이대
subject 존재의 숲

존재의 숲


1

“프루스트에게 있어 회상은 인간이 자신의 진실한 시간, 진실한 공간 그리고 진실한 자기 자신을 찾는 방법이자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되찾은 삶의 진실은 삶의 모든 허무함을 떨치고 소설을 쓰는 일이다. 그래서 비평가 조르쥬 풀레도‘따라서 프루스트의 사상에서의 회상은 기독교 사상에서 은총과 같이 초자연적 역할을 한다.  (…) 회상이란 인간이 혼자 힘으로는 빠져 나올 수 없는 허무로부터 인간을 구출하기 위해 찾아온 천상의 구원인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2006년 7월 10일의 일이었다. 이 구절을 발견해 읽었을 때, 반짝이고 날카로운 무엇인가가 나를 찔렀다.


2

2006년 1월. 나는 내 좁지 않은 자취방에서. 모니터를 마주하고 커다란 상자 위에 앉았다.
마음은 그 어떤 때보다도 차분했다.


용기와 모험만이 인간을 변화시킨다. 아니, 어쩌면 모든 것은 그것들로 인해 변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용기와 모험이라는 이름은 쉽사리 얻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그런 이유로,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간해서는 변화할 수 없다. 단지 변화한 것’처럼’ 보일 수 있을 뿐이다. 용기와 모험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가지고.
용기와 모험만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유는 그것만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2006년 1월. 나는 내 자취방에서. 모니터를 마주하고 상자 위에 앉아. 22년이라는 지금까지의 인생 동안 내가 가져 왔던 용기와 모험의 합보다 훨씬 더 큰 그것들을 끄집어 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인지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전 우주의 축복이라도 받은 듯한 그 밤에, 나는 힘겨운 변화로의 첫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는 것이다. 커다란 용기를 가지고.

내 첫 글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글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 밤의 기분을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분명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초입과도 같은 느낌. 상상할 수도 없고,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 분명 그런 느낌이었다.
믿을 수 없는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그 길의 초입에서, 보통의 나였다면 눈과 귀와 입을 닫고, 평소와 같은 일상의 세계를 향해 뒤돌아 섰을 테지만 전 우주가 나를 축복하고 있던 그 밤의 나는 놀랍게도 용기로 충만해 있었다. 나는 눈을 뜨고, 귀와 입을 열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모니터와 커다란 상자 그리고 피쉬만즈의 음악을 무기로 삼아,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모험의 길로.


3

내 속에(그것이 머릿속이든 마음속이든 가슴속이든) 불명확하게, 어지럽게, 모호하게, 답답하게 그러나 확연한 존재감으로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을 간신히 간신히 구체화시켜 내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 모호한 존재의 숲에서 부유하며 나를 불안하게, 어지럽게 하는 그것에 구체화된 형체를 부여하는 일. 그로써 허무로부터 벗어나는 일. 그것이 글을 쓴다는 행위의 의미. 물론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그 작고 허약한 것을 구체화시켜 새로운 존재의 숲을 쌓아가는 일은 어찌 보면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하며 빈약한 의미로밖에는 주장되지 못할 그런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 행위의 가운데에선 언제나 고통스런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으며, 그런 시간이 들어 끄집어내어진 결과물은 내가 떠올리며 원하던 것의 빛깔만 희미하게 띠고 있을 뿐, 항상 결코 명확히 그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글을 쓴다라는 행위를 통해 내 안의 막연한 부유물이 모니터에 확고한 검은 색으로 꺼내어질 때, 나는 잿빛 안개가 가득 낀 모호하고 불투명한 존재의 숲 한구석으로부터 선명한 색이 돌아오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순간을 위해.
단지 한 개의 작은 퍼즐 조각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들여 나머지 구백구십구 조각의 퍼즐을 끼워 맞추듯, 나는 쓴다.


4

짙은 안개가 가득한 존재의 숲에서의 모험을 시작했다. 2006년 1월. 필연적이고도 숙명적인 허무가 무겁게 드리내리워져 있는 존재의 숲을, 비로소 헤쳐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동안은 두려움에 떨며 회피하고 직시하기를 꺼렸던 허무를, 비로소 나는 용기와 커다란 상자라는 무기를 가지고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시간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으며, 공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새로운 진실한 시간과 공간 속의 존재의 숲을 살아가는 나 또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해 있었다.
내 안의 모호하고 허무한 존재의 숲은, 회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쓴다’는 행위로써 선명한 색을 지닌 명확한 존재의 숲으로 새로이 변화해 가고 있다.


그 명확한 존재의 숲의 한구석에는 돌고래와 J가, 그리고 또 다른 한구석에선 소년과 소녀가 한가로이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의자 삼은 커다란 상자 위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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