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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06/08/24  
         name          이대
subject E. M. 포스터와 그의 세계

E. M. 포스터와 그의 세계


7월 16일 버들이 선물한 <전망 좋은 방>으로 시작해서 E. M. 포스터의 <하워즈 엔드>, <모리스>를 연이어 읽었습니다. 그 책들을 제 나름대로 일단락 짓는다는 의미에서 세 작품에서 보여진 공통점을 중심으로 그의 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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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의 책에서 주인공들은 항상 다른 누군가의 영향으로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의 책에서 주인공들은 언제나 불완전한 인물로서 등장합니다. 그러다 보니 행동이나 생각은 변변치 못하죠.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다른 이의 영향으로 점차 변화하고 완전해져 갑니다. 책의 초반부의 주인공과 후반부의 주인공이 정말 같은 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그들은 변합니다. 솔직히 이야기의 초반에는 주인공들이 답답하기만 해요. 안쓰럽기도 하고요. 심지어는 약간 싫기까지 합니다. 세 권의 책에서 전부 그랬으니 놀라울 밖에요. 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들은 변하고 완전해지고 따라서 그들을 보는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흐뭇한 마음이라고 해도 좋겠네요. ‘이렇게 컸구나…’하는 것과 비슷해요.

<전망좋은 방>의 루시는 예쁘기는 하지만 사회가 당연한 것이라고 가르친 것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물입니다. 의심할 줄 모르고 자신을 이해하려 들지 않죠.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이해마저도 다른 사람의 판단에 맡깁니다. 복잡한 건 무시해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는 외면합니다. 하지만 그녀를 비난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가 평생토록 보고 듣고 배운 것은 그녀의 어머니 허니처치 부인과 사촌언니 샬럿의 세계거든요. 그 세계(그런 환경)에서는 그런 것들이 당연하니 그 속에서 자란 그녀 역시 그럴 수밖에요. 책 초반의 루시는 <하워즈 엔드>의 이비나 돌리와 비슷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녀는 샬럿과 함께 한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갑니다. 거기에는 에머슨 부자의 영향이 가장 크죠. 루시는 조지 에머슨과의 경험, 에머슨 씨와 나눈 대화 등의 영향으로 조금씩 변화합니다. 그들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려고만 하는 인간에서 벗어나 자신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감정을 직시할 줄 아는 인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하워즈 엔드>의 마거릿은 분명 긍정적인 인간형이긴 하지만 얼마간은 속물적이고 또 얼마간은 독선적이기도 합니다. 그녀 역시 세 남매가 형성한 세계 속에서 그런 식으로 자라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윌콕스 부인을 만남으로 해서 그녀는 변합니다. 그 변화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녀는 완전으로 좀 더 다가가게 된 거죠. 마거릿은 그 때까지 자신이 추구하던 생활에 염증을 느낍니다. ‘그저 원숭이 무리처럼 끽끽대면서 살 뿐이에요.’

<모리스>의 모리스 홀은 그야말로 평범한 소년입니다. 부족할 것 없는 가정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가족들과 함께 성장했죠. 그는 ‘한마디로 그저 그런 학생이었고, 어디서나 희미한 호감만을 남’기는 아이였을 뿐입니다. 그런 평범성은 퍼블릭 스쿨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로 진학한 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당시에는 어느 정도 집안의 소년이 케임브리지에 진학하는 일은 역시나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케임브리지에서 클라이브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면서 모리스는 변해 갑니다. 클라이브가 모리스를 변화시킨 거죠. 클라이브는 모리스가 인식하려 들지 않았던 모리스의 진정한 모습을 그에게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점차로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켜 가게 됩니다(가장 큰 변화는 그를 일깨워 준 것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이 지점부터 <모리스>는 앞의 작품들과 약간 달라집니다. 클라이브는 모리스를 변화시킨 채로 모리스를 떠나고 모리스는 그 스스로 좌절과 아픔을 딛고 자신을 완성시킵니다. 클라이브를 통해 얻은 자기 인식을 뛰어넘어 자신을 확신함으로써 자기 완성에 도달하게 되는거죠.

포스터의 작품 안에서 주인공들이 그토록 불완전한 이유는 그들이 그런 환경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포스터의 주인공들의 모습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들이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 변화에 성공한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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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의 작품에서는 주인공 뿐 아니라 주변 인물이라 할지라도 한 인물이 이야기에 등장하면 매우 자연스럽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 인물의 가족, 심지어는 친척들까지 서사의 중심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서사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요즈음의 소설과 비교해 보면 신기하기만 합니다. 20세기 초의 세계에서는 그런 게 그토록 당연했나 봅니다. 도저히 한 인물이 한 인물로 보이질 않아요. 개인이 없어요. 루시 허니처치에게는 허니처치 가(家)가 있고, 루스 윌콕스에게는 윌콕스 가가 있고 마거릿 슐레겔에게는 슐레겔 가가 당연하게도 존재하는 겁니다. 이게 참, 어떻게 보면 포스터의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요즈음의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에는 그 ‘당연하게 존재하는’ 가족과 친척들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포스터의 책에 등장하는 모든 집들은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이 이름을 가지고 있다니! 정말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1900년대 초 영국이라는 세계 속에서, 집은 단지 부동산이나 잠 자는 곳의 개념이 아닙니다. 집은 그 자체로 그 가문이기도 해요. 가문의 역사와 가문의 기억, 가문의 영혼이 ‘집’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거죠.

하지만 <모리스>는 또 약간 다릅니다. <모리스>의 인물 구조도를 그리자면 꼭 필요한 인물은 모리스와 클라이브 그리고 알렉 이렇게 셋 뿐입니다. 물론 <모리스>에도 홀 부인이나 에이다, 키티, 더럼 부인, 앤 등 가족과 친척들이 등장하기는 해요. 그러나 그들은 서사에 그리 중요하지 않고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돈까스의 양배추샐러드 같은 역할밖에는 작품 속에서 담당하지 않는 거죠. <모리스>에 붙어 있는 지은이의 말에서 포스터는 자신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 가운데 이런 식으로 시작된 작품은 없었다고 말해요. 대략의 구상과 세 명의 인물이 자신의 펜으로 밀려들어 막힘 없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모리스>가 얼마나 개인으로서의 인물에 충실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긴, 그런 소재를 다룬 작품이란 개인적일 수밖에는 없는지도 모르지요. 게다가 자전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으니 더더욱. 그러다 보니 포스터의 다른 작품에서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생생하고 분명한 인상을 남겨주었던 것에 비해, <모리스>에서는 그 셋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흐릿하게만 기억에 남아 있네요. 심지어는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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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의 주인공들은 자신을 완성하면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갑니다. 그리고는 뒤에 남는 상대 인물(적합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네요)에게 다들 한 번씩 잔인해져요.

<전망 좋은 방>의 루시는 세실의 본 모습을 자각하고는 그에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기억 속에서 한 문장이 떠올랐고 그녀는 거기 수긍했다. “당신은 누구하고도 친밀해질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어찌나 냉혹하게 보이는지요. 그동안 밉기만 했던 세실이 다 안쓰러워질 정도였습니다.

<하워즈 엔드>에서도 마거릿은 과거를 회피하기만 하는 헨리를 다그칩니다. <“듣기 싫겠죠!” 그녀가 소리쳤다. 하지만 헨리, 아무리 끔찍한 일이라고 해도 당신은 두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해야 돼요. 당신은 정부가 있었어요. 나는 용서했어요. 헬렌은 애인이 있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그 애를 집에서 내보내라고 해요. 연결이 되나요? 어리석고 뻔뻔하고 잔인한 일이에요. 너무 끔찍해요! 살아 있는 아내를 모욕해 놓고 죽은 아내를 말하는 남자, 쾌락을 좇아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쳐 놓고 그 여자를 버려서 다른 남자들을 망치게 한 남자. 그리고 엉터리 충고를 해 놓고 나중에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발뻄하는 남자. 그런 남자가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은 그런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해요. 왜냐하면 연결시키지 못하니까요.
나는 당신의 무분별한 친절을 이미 충분히 겪었어요. 또 당신의 응석도 충분히 받아 주었어요. 당신은 평생토록 그렇게 응석만 부렸어요. 윌콕스 부인도 당신의 응석을 받아 주었어요. 아무도 당신에게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말해 주지 않았어요. 당신은 모든 게 뒤엉켜 있어요. 죄악에 이를 만큼 뒤엉켜 있어요. 당신 같은 사람은 참회도 방패막이일 뿐이니까 참회도 하지 마세요. 그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세요. “헬렌이 한 일은 나도 한 일이다”라고요.>
마거릿은 헨리의 행동을 더 이상은 견디기 어려웠던 거겠죠. 마거릿은 헨리를 사랑하지만 그 둘은 원래부터 다른 사람들이니까요.
<모리스>에서 모리스는 어떻게 보면 가장 잔인합니다. 과거의 연인이었던 클라이브에게 자신이 알렉과 한 행동을 전부 말하거든요. 모리스에게 클라이브는 과거의 사람입니다. 더는 읽지 않을 과거의 책입니다. 모리스는 그렇게 먼지만 쌓여 가는 과거의 책을 책꽂이로 돌려 보내려 합니다. 그렇게 잔인했지만 사실 클라이브를 동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이 무뎌지고 속물이 되어버린 그는 그런 일로는 상처받지 않거든요. 단지 참을 수 없이 역겨워할 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잔인해져야 했던 이유는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잔인해지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것은 자신과 상대 인물 둘 다를 위해서도 어쩌면 꼭 필요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일을 거쳐 변화한 것은 세실 뿐이긴 하지만요. 헨리는 또 회피하고 클라이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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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포스터가 그렇게 야속할 수 없습니다. 포스터는 항상 아름다운 시간을 금방 끝내버려요. 그런 아름답고 평온한 시간이 계속 이어져 책을 가득 매우면 좋겠다는 생각만 드는 저로서는, 그런 점에서 아직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전망좋은 방>의 맨 마지막 챕터는 최근 읽은 책들의 그 어떤 장면보다, 최근 본 영화의 그 어떤 장면보다 아름다웠습니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어도 읽을때마다 가슴이 행복감으로 가득해져요. 챕터가 짧긴 하지만 그렇게 끝나니 그래도 이어질 내용을 상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망좋은 방>은 다른 작품에 비해 양반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하워즈 엔드>는 정말 너무합니다. 윌콕스 부인의 완벽함에서 흘러나오는 매력과 마거릿과 둘이서 함께 보내는 아름다운 시간들에 넋을 잃고 빠져 있었는데 그렇게나 갑작스레 윌콕스 부인이 죽음을 맞이하다니요. 그 둘의 아름다운 시간에 빼앗겨버린 마음은 어쩌란 말입니까. 마거릿 혼자서는 그런 시간을 만들 수 없잖아요.

<모리스>도 <하워즈 엔드> 못지 않습니다. 모리스가 진짜 자신을 직시하고 클라이브의 사랑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주체할 수 없을만큼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펼쳐집니다. 그 시간 속에서는 정말 모든 게 완벽해요. 포스터는 둘의 그런 시간이 2년 넘게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문장만으로는 그 시간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감상할 수는 없는 게 당연하니 더욱 아쉬울 밖에요. 완벽한 시간에 감탄해 들어가는 순간 포스터는 그렇게 중간을 뛰어넘은 2년 뒤의 시간을 들이댑니다. 그리고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는 정상이 되었어. 나도 어쩔 수 없어.>라는 문장으로 거칠게 그 아름다운 시간을 끝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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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 달에 걸쳐 포스터의 세 작품을 읽었습니다. 특별히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읽고 보니 그의 문학적 절정기에 쓰여진 세 작품을, 그것도 쓰여진 순서대로 읽은 것이었습니다. 그냥 제목을 보고 읽고 싶은 느낌이 드는 작품을 고른 것인데 말이죠.
남은 세 편의 포스터의 장편소설은 나중의 저를 위해 남겨 둘 생각입니다. 언젠가 서점에서 그의 책과 마주치면 반가운 마음으로 구입할 기회를 주는거죠. 사실 지치기도 했구요.
어쨌든 7월 16일부터 8월 18일까지 포스터와 함께 한 그 시간은 저에게 꽤 많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 주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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