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 bar.


total : 251, page : 7 / 8, connect : 0 login  join
      view article 2006/09/26  
         name          이대
subject 오후 네 시의 밥 먹었느냐는 인사와, 실없는 농담

오후 네 시의 밥 먹었느냐는 인사와, 실없는 농담


나는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 위에 떠 있다. 햇볕은 따스하고 물결은 잔잔하다. 바닷물은 한없이 맑아 불균등한 해저의 굴곡까지 눈에 들어올 정도이다. 나는 뱃전에 몸을 기대고 기분좋을 정도로 따듯한 바닷물을 손으로 휘젓기도 하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낸다. 머리 위로는 가끔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아주 작게 반짝이는 비행기가 지나가기도 한다. 구름 한 조각 없이 푸른 하늘에서 그 반짝임은 도드라져 보인다.

나는 바닷물 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해저의 깊은 곳에는 19세기의 여객선이 가라앉아 있다. 물이끼와 진흙, 수많은 해저생물에 반쯤 파묻힌 19세기의 여객선은 그 자체로 이미 해저의 한 굴곡을 이루고 있다. 바닷물 속 깊은 곳, 해수면을 향해 뉘어진 타원형의 창 안에서 고요한 반짝임이 스쳐간다.

한없이 포근한 기분에 싸여 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에게로, 멀리서부터 고장난 진공청소기와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보트 한 척이 다가온다. 보트는 시끄러운 소리를 멈추지 않고, 나를 향해 밥 먹었느냐는 물결을 보낸다. 그 물결에 내가 타고 있는 보트의 한가로움은 출렁이기 시작한다. 해저의 가라앉은 여객선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요란한 소리를 뚫고, 나는 가까스로 네, 하는 물결을 보내지만 그 물결이 가닿기도 전에 보트는 뱃머리를 돌려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닿아야 할 곳을 잃은 내 물결은 그대로 한없이 한없이 나아가다가 결국 가라앉아 버린다. 보트에서 일어나 내 물결이 가라앉는 곳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앉는다.

어지러워진 물결과 탁해진 물 속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물결이 어느 정도 잦아들어 가라앉은 여객선의 어렴풋한 윤곽 정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요란한 소리로 가득한 보트가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보트는 아까와 똑같은 물결을 보내온다. 밥 먹었느냐. 내 보트는 아까보다 더 크게 출렁인다. 한없이 나아가던 물결이 가라앉는 것을 확인했던 나로서는 또 한 번 물결을 보내야만 하는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까보다 훨씬 더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보트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기다리며 내 앞에 머물러 있는 이상 나는 또 한 번 외로운 물결을 보낼 수밖에 없다. 네, 하는 물결이 내 보트에서 나아갈 준비를 겨우 마쳤을 뿐인데 시끄러운 보트는 이미 벌써 반쯤 몸체를 틀고 있었다. 물결이 내 보트로부터 출발하자, 보트는 내 물결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재빠르게 몸체를 돌려 되돌아간다. 물결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또 한없이 한없이 나아간다.

나는 더 이상은 그런 물결에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 마음먹는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19세기의 유람선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오후 네 시가 되었다. 멀리서부터 또다시 요란한 소리의 물결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긴장했다. 가까운 곳까지 다가온 시끄러운 보트는 내게 밥 먹었느냐고 묻는 물결을 보냈다. 이번의 물결은 분명 다르다. 이것은 ‘오후 네 시에 물어 오는 밥 먹었느냐는 물결’인 것이다.
이것은 위험하다. 나는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오후 네 시의 그런 물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내 보트는 뒤집어졌고 나는 물에 빠졌다. 시끄러운 보트는 물에 빠진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내가 되보낼 물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 기다림을 무시하고 시끄러운 보트를 바라보고만 있자, 시끄러운 보트는 더없이 너그러운 관용이라도 베풀 듯 보트에 한가득 실려 있던 실없는 농담들을 내게 던지기 시작했다. 실없는 농담들이 내 주위의 수면을 가득 메웠지만 나는 그것들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나는 시끄러운 보트와 실없는 농담들을 뒤로 하고 가라앉은 19세기 여객선의 고요한 반짝임을 향해 헤엄쳐 들어갔다.




내가 바다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본 요란한 소리를 내는 보트는 다른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실없는 농담들을 가득 싣고 있는 보트들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그 보트들과 ‘저 녀석은 안되겠어.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더군’, 하며 낄낄대는 물결을 나눈다.




만쥬 2006/10/06  delete

왜 이렇게도 웃긴데 슬프지;


prev

시간에 약한 나 [1]

이대  

back

참치를 둘러싼 이야기 - 에필로그 혹은 프롤로그

이대  

list reply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Neotu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