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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07/02/14  
         name          이대
subject 배신감


배신감


배신감, 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을 달고 있긴 하지만, 언제나처럼 이 글도 누군가를 향한 글은 아니다. 그러니 다들 부담 놓으시길.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ㅡ적어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ㅡ머리를 감을 때 왼손만을 사용한다. 샴푸로 거품을 다 낸 후에 머리를 헹굴 때 보통 오른손으로 샤워기를 붙들고 헹구는데, 그 때 샤워기에 거품이 묻는 게 싫다는,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왼손으로만 머리를 감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작년 이맘때 즈음부터는 양치질을 할 때 왼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네이버에서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영국 BBC에서 발표했다는 ‘머리가 좋아지는 생활 속 간단한 습관들 열 가지’뭐 그 비슷한 제목을 가진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 기사에 실린 머리가 좋아진다는 습관들 가운데 ‘왼손으로 양치질하기’따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평소 안 쓰는 쪽의 손을 사용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어찌 보면 무척이나 당연하기만 한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BBC에서 발표한 다른 습관들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궁금해 할 사람들을 위해 기억나는 몇 가지를 더 적어 보자면, 빠른 걸음으로 걷기, 스도쿠 풀기, 눈 감고 샤워하기 등이 있었는데 나는 아주 느리게 걷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고, 그때는 스도쿠라는 게 뭔지도 몰랐고, 또 눈을 감고 샤워하다 보면 화장실 바닥도 미끄러운데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고 하다 보니 결국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머리가 좋아지는 생활 속 간단한 습관’은 안 쓰는 쪽의 손을 사용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나로서는 생활 속에서 양치질 말고는 마땅히 왼손을 쓸 만한 다른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여하튼, 그렇게 왼손으로 양치질을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당연하게도 영 시원찮았다. 양치질의 기본이자 핵심이랄 수 있는 칫솔의 상하운동이 어색하기만 했고, 어금니 저 깊은 곳을 닦아내는 칫솔질도 영 미덥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좋아지고 싶다는 일념 하에 찝찝함을 감수해 내며 왼손으로 양치질하기를 계속해 나갔는데,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놀랍게도, 왼손으로 하는 양치질은 금방 익숙해져 버렸다. 2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십 년도 넘게 오른손으로만 해 왔던 양치질이 그렇게나 금방 왼손에 익숙해져 버리다니.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금세 익숙해져 버린 왼손으로의 양치질을 계속해 나가던 어느 날, 나는 시험 삼아 오른손으로 한 번 양치질을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어쩐지 영 어색하기만 한 게 아닌가. 마치 왼손으로 처음 양치질을 시도한 날의 시원찮기만 한 그 느낌과 비슷했다. 십 년도 넘게 계속해 온 습관을 오른손은 단 한 달여 만에 그만 잊어버린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는 ‘아, 그러니까 배신감이라는 제목은 그렇게 금방 10년도 넘게 해 온 양치질을 잊어버리고 만 오른손에 대한 것이겠구나.’하고 추측해버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안하다, 그런 건 아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나는 오히려 오른손의 그 ‘잊어버림’ 혹은 ‘어색함’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해 온 것이라도 얼마간 하지 않으면,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익숙하기만 했던 것이라도 어색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내겐 한가지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자전거타기이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의, 뒷바퀴 양 옆으로 작은 바퀴가 달린 네발 자전거 말고는 자전거를 사 본 적도 없는데, 그래서 우리 집에는 바퀴가 두 개 달린 자전거가 들여 놓여진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내 몸은 어째서인지 한 번 배운 자전거타기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것도 양치질 같은 것처럼 십 년을 넘게 타거나 한 것도 아니고, 초등학교 중학교때 가끔 한 번씩 친구가 가져온 자전거를 빌려 타보곤 했던 것인데도 말이다.
요즘에는 도통 자전거를 탈 기회가 없어서 겨우 일 년에 한 번 정도씩 자전거를 타 보곤 하는데, 그 때마다 자전거타기는 너무 익숙하기만 하다.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내 몸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자전거를 탄 건데 너(내 몸 말이다)는 왜 이렇게 익숙하기만 한 거지? 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비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해 보자면,
나와 친한 친구 A와 B가 있었는데 내가 어느 날 친구 A와 다투고는 더 이상은 친하게 지내지 않게 되었다고 치자. 그래서 나는 당연히 B도 A와 친하게 지내지 않고 있을 줄로만 굳게 믿고 있었는데 어느 날 A와 친하게 지내는 B를 보고야 만 것이다! 이런 종류의 배신감. 그것이 내가 익숙하게 자전거를 타는 내 몸에 대해 느끼는 배신감이다.

나는 자전거타기를 싫어하지 않지만, 아니 오히려 자전거를 탈 때의 그 느낌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오랜만의 자전거타기에 익숙해하는 내 몸에 대한 그런 종류의 배신감은 쉽사리 떨쳐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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