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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07/02/14  
         name          이대
subject 참치를 둘러싼 이야기 - 下


참치를 둘러싼 이야기 - 下






          *          *          *



나는 혼자서 거리의 한 모퉁이에 있는 카페로 걸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참치는 창가 자리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석양은 참치의 비늘을 주황빛으로 물들였고 그 때문에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있는 참치의 지느러미는 추상적인 정물화처럼 보였다.
내가 테이블로 다가가자 잡지를 보고 있던 참치는 가슴지느러미를 움직여 나를 올려다 보았다.
  “5분 늦으셨군요.”
그것이 참치가 나에게 말한 첫 마디였다. 참치의 목소리는 어딘가 무리에서 떨어진 양의 울음소리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나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참치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당신도 예상하고 있던 일 아니었소?”
  “사실 그렇긴 하지.”
참치는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셨다.
  “참치가 커피를 마셔도 되는 것인가요?” 나는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들어 그렇게 물어 보았다.
  “물론이오.” 참치가 말했다. “참치라고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 당신도 알다시피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마시면 되는 거요. 맥주를 마시고 싶은 참치가 있다면 그 참치는 맥주를 마시면 되는 거고.”
당신도 알다시피, 라는 말이 그렇게 이상하게 들린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나를 지탱하고 있던 평범함의 세계가 점점 나와 멀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가까스로 힘을 내 평범함의 세계에 매달려 참치에게 물었다.

  “그래서, 왜 참치 통조림은 변해버린 거지요?”
  “음, 그래.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지요.” 참치는 에스프레소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했다. “모든 건 우리가 참치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하오.”
참치는 테이블 앞으로 배지느러미 윗부분을 내밀고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본래 우리의 이름은 참치가 아니었소, 우리의 이름은 참다랑어였지. 참치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름은 당신들이 자의적으로 붙인 것이오. 지금은 참다랑어라는 이름으로는 아무도 우리를 떠올리지 못하오. 참치라는 이름만이 우리를 표상하게 된 것이지. 그렇게 우리는 참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소.”
“하지만 참다랑어라는 그 이름도 사실 우리들이 붙인 이름이지 않은가 싶은데요. 당신들이 ‘우리는 참다랑어라는 이름을 갖고 싶소’ 해서 그렇게 불렸던 건 아니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이제 손가락 끝만을 겨우 평범함의 세계에 걸쳐 둔 채로 나는 참치에게 말했다.
참치는 말을 계속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는 충분히 알겠소. 그렇지만 참다랑어라는 이름은 그래도 구체적인 맥락 위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않소. 하지만 참치라는 이름은 최소한의 맥락도 갖지 못한 채 덩그러니 존재하는 그저 우연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오.”

참치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답뱃갑에서 지느러미로 담배를 한 개비 뽑아 불을 붙였다.
  “우리가 참치라는 이름을 갖게 된 후, 우리들의 존재는 그 이름처럼 되어 버렸소. 맥락이 없는 존재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아시오? 그 때부터 우리의 존재는 우연으로만 가득하게 되어 버렸고 우리는 한동안 어쩔 수 없이 거기에 휩쓸려 다녔지.”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참치는 가슴지느러미 윗부분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회한에 찬 눈빛이라고 불러도 될 법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소. 우리는 어떻게든 우리의 맥락을 되찾아야만 했지.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방법이 참치 통조림의 변전이오. 우리는 그렇게라도 잃어버린 맥락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대변해 줄 매개자를 찾아내려 했던 것이지요. 우리가 그렇게 노력해 온 지도 이제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소.”
  “그런데 왜 하필이면 참치 통조림으로 표현하려 한 것이죠? 다른 방법도 많았을 텐데요, 이를테면 초밥이라든가 하는.”
  “그것은 전 세계 참치 어획량의 절반 이상이 통조림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오.” 참치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담배를 다시 한 모금 빨았다. “당신들은 우리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소. 당신은 참치가 얼마나 큰 물고기인지 알고 있소? 우리 중 큰 친구 가운데는 3m에 560kg이 되는 친구도 있지. 그런 우리들인데 통조림이란 겨우 165g에 불과하오. 당신은 그런 걸 이해할 수 있겠소?”
참치는 눈시울마저 약간 붉히며 말했다. 그런 참치의 말에 나는 최대한 조심스런 말투로 대답했다.
  “잘은 모르지만 큰 식당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참치 통조림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말을 마치자 참치는 머리의 비늘과 가슴지느러미를 몸에 딱 붙여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굳은 표정으로 잠시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던 참치가 말했다.
  “나는 지금 일반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요.”
그랬다. 그 참치는 일반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          *          *



  “그런 거였구나.” 수화기 너머에서 J가 말했다.
  “그래.”
  “참치씨는 그래도 이젠 조금의 맥락은 되찾을 수 있었겠지?”
  “아마 그럴 거야.” 나는 말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는 말을 이었다.
  “어쩌면 사실 참치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 어쩌면.”
잠깐 동안의 침묵이 전화선 사이를 흘렀다.
  “그래, 넌 언제까지 이야기는 쓰지 않을 거지?” J가 내게 물었다.
  “언젠가, 내가 좀 더 성장하고, 내가 좀 더 많은 책을 읽게 되면, 어쩌면 그럴듯한 이유가 생길지도 몰라. 아마 그 때쯤이면 나도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 어쩌면.” J가 말했다. “모든 건 참치에게 달린 문제지.”
  “응.”

J가 존재하는 수화기 저 편의 세계로부터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들려 왔다.






2006. 09.




이대 201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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