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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article 2007/02/14  
         name          이대
subject 참치를 둘러싼 이야기 - 中


참치를 둘러싼 이야기 - 中






          *          *          *


아무래도 나는 ‘이야기’에는 별반 관심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마 전부터 나를 사로잡고 있다. 언제나 나에게 중요한 것, 나에게 오래도록 남는 것, 그리고 결국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그 작품ㅡ그것이 책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음악이든 간에ㅡ이 전하는, 그 작품으로부터 전해받은 느낌과 분위기이다.
내가 하루키의 초기작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결국엔 그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의 그 무덤덤한 분위기. 그 분위기만 남아 있다면 이야기 따위는, 나로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더 큰 매력이란, 사실 그 분위기들의 ‘일관성’이다. 한 작품은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끝나지만 그 분위기는 다음 작품으로, 또 다음 작품으로 계속해 이어진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1973년의 핀볼 – 양을 쫓는 모험(그리고 수많은 단편들과 다음 작품들)으로 이어지는 그 일관된 느낌이란,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데아와도 같은 것이다. 여러 편의 개별적인 소설들이 일관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끝없는 이야기의 세계와도 같다, 물론 나에게는.
내가 양을 쫓는 모험을 가장 좋아하는 책, 가장 완벽한 책으로 꼽는 이유도 어쩌면 그 책이 하루키 초기작들 중 가장 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길다는 것은 그만큼 그 분위기를 오래도록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니까.
나는 여기까지 말을 마치고 돌고래를 쳐다보았다.

  “네가 말하는, 그 하루키의 분위기란 어떤 거지?”
돌고래는 안경 너머 갈색 물음표를 품은 눈동자로 내게 물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어떤 식으로 말을 시작해야 할지 생각했다.
  “돌고래,” 하고 나는 말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네 글을 읽을 때마다, 네가 어떤 대상으로부터 받은 느낌, 감상,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에 감탄하곤 해. 소녀 시절의 사에키상이 입구의 돌 너머의 세계에서 환상의 코드를 가지고 와 곡을 만들었듯, 너도 어딘가로부터 그런 문장을 가지고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말이야. 너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네가 적어내는 문장들은 마치 맨 처음 태어날 때부터 너의 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아. 그 단어들의 조합과 그 문장이 아니고서는 절대 안 될 것 같은 필연적인 느낌을 준단 말이야. 나는 그처럼 단 몇 개의 문장만으로 네 감정과 느낌을 표현해 내는 네 글을 볼 때마다 감탄할 수밖에 없는 거야.”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돌고래가 말했다.
나는 돌고래가 말한 그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몇 가지의 해석들 중에서 나는, ‘(네가 그 느낌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해석을 골랐다. 나는 말을 계속 이었다.
  “나에게는 너와 같은 그런 능력은 없어. 명확한 문장으로 내가 받은 느낌과 감상을 표현해 내려 아무리 노력해 봐도, 그 문장들은 목구멍 안에서만 옹알대다가, 손가락 중간 즈음에서만 꿈틀대다가 결국엔 좌절되고 말아.”
  “그래서, 너는 지금 하루키의 그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려는 거지?”
  “그래.” 하고 나는 대답했다.
  “네 글은,” 하는 단어로 돌고래는 말을 시작했다. “그래도 그걸로 충분한걸.”
나와 나란히 걸어가던 돌고래의 곁으로 한 줄기 맑은 바람이 불어 왔다. 그것은 분명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냄새를 가진 바람이었다. 그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돌고래의 얼굴은 분명 한층 부드러워져 있었다.

  “내 글은, 그런 나를 극복해내기 위한 방편이야. 이를테면 동어반복과 중언부언의 문장들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마 조금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나는 단지 내 글을 통해 어떠한 분위기를 전하고 싶을 뿐이야.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를. 그러기 위해 나는 너와 같은 바로 그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태어난 듯한 문장을 쓰지 못하는 대신, 내가 전하고자 하는 분위기와 느낌을 품고 있는 거의 비슷한 문장들을 계속해서 반복해 짜 맞추어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방법을 택했어. 그렇게 하면, 그 비슷하고 별반 다를 것도 없는 문장들을 계속해 눈으로 주워삼킨 상대방이, 내가 전하고자 하는 그 느낌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 내 글이란 결국 그런 거야.”
“그렇구나.” 돌고래는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대답했다.
돌고래와 나는 잠시 말없이 걸었다. 우리 앞으로 지워지지 않는 길이 구불구불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참치는 네게 무슨 이야기를 했던 거지?” 돌고래가 갑작스레 나에게 물었다. 지난 밤의 그 전화를 잠시 잊고 있었던 나는, 돌고래가 그 전화에 대해 물었을 때 바로 어젯밤의 전화였는데도 불구하고 불규칙한 존재감 속에서 전화를 떠올렸다. 심해의 바닥에 가라앉은 19세기의 여객선을 인양하듯, 나는 그 전화를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안녕하시오? 나는 참치라오.”
전화를 건 것은 참치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그 불안한 예감의 전화를 역시 받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를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걸려 온 전화란, 일단 받은 이상은 계속해 통화를 해야 할 수밖에 없다. 그 전화를 건 쪽이 자신을 ‘참치’라고 밝히는 경우에는 더더욱.

  “참치, 라구요?”
  “그렇소만.”
  “참치라면 혹시, 그 물고기를 말하는 것이오?”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평범함의 세계로 최대한 몸을 낮춘 채 그렇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상대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 무덤덤함은 19세기의 여객선이 천천히 천천히 침몰해 가는 정도의 무덤덤함이었다.
  “참치씨가 내게 무슨 일로 전화를 건 거요?”
  “당신은 분명, 변전한 참치 통조림에 대해 궁금해했지 않소? 그런 당신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오.”
나는 말없이 전화기 선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바닷속에 가라앉은 19세기의 여객선에 대해 생각했다.
  “내일 오후 다섯시, 카페에서 기다리겠소. 그럼.”
참치는 전화가 걸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참치가 수화기를 내려놓은 저 편으로부터 어쩐지 깊은 해저의 캄캄한 적막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 놓고 냉장고로 다가가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맥주를 꺼냈다. 잠깐 습관처럼 안주에 대해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주 따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일 오후 다섯시, 카페에서 기다리겠소. 그럼, 이라니. 참치는 대체 무엇이 ‘그럼’이라는 것이었을까. 더군다나 나로서는 참치가 말한 ‘카페’가 대체 어떤 카페인지도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맥주가 반쯤 비워졌을 때 나는 그 전화를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랬군.” 돌고래가 말했다. “그런데 왜 무시하기로 한 거지?”
“그 전화를 무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무시하기로 결정하는 게 스스로에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거든.”
“그래.”
돌고래와 나는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을 계속해 걸어갔다.

  “그런데,” 손에 든 빵가게의 봉지를 흔들며 걸어가던 돌고래가 말을 꺼냈다. “넌 왜 그런 글을 쓰기 시작한 거지?”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내 옆에 나란히 멈춰 선 돌고래의 옆으로 포플러가 나뭇잎 하나를 떨어트렸다.
  “맨 처음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절망적일 만큼 혼자라고 느꼈거든.” 하고 나는 말했다. “아무도, 아무 것도 없는 기분이었어 내 곁에. 하지만 나는 그 세계에 결코 휘둘리고 싶지는 않았어. 그 적막의 세계에 휘둘리지 않으려 나를 붙들어 매 두고, 나는 전하고 싶었을 뿐이야. 말하자면 나는 소통의 수단으로 글을 선택한 거지.”
돌고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누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건데?”
  “어딘가에 존재할,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어둠 속에서 단 한줄기의 희망을 품고 깜빡이는 불빛을 비추듯, 나는 나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내가 전하려는 것들을 전해 받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쓰기 시작했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는 거야.”
  “네게 관심이 있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실 그건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긴 해. 하지만 최소한, 오후 네 시에 밥 먹었느냐고 물어 보는 사람에게서는 관심의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니까.”
돌고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난처하군, 오후 네 시의 그런 인사란.”
“그래. 나는 오후 네 시에 지나가며 밥 먹었냐고 물어보듯이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는 게 아니야. 나는, 내게 관심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 것 따위, 원치 않아. 그런 사람들과는 결국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쓰고 있는 글은, 새로운 글이 올라갈 때마다 반가워하며 읽어 주는, 나에게 관심이 있고 결국엔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거야. 그런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글이야.”
  “이를 테면, 나 같은?” 돌고래는 장난기 가득한 눈웃음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그래.”
돌고래를 스치고 지나갔던,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냄새를 가진 바람이 내 얼굴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밖에는 소통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쓰는 글들이 같은 맥락 위에서 일관된 분위기를 가지길 원한다. 그리고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그 글로부터 일관된 분위기를 전해 받길 원한다. 내가 주력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일관된 분위기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나는 처음 글을 업로드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천천히 함께 읽으며 따라 온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만이 그 분위기의 세계를 오롯이 느껴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봐.” 돌고래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불렀다.
돌고래가 손을 뻗어 가리킨 거리의 한 모퉁이에 카페가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다가 돌고래에게 물었다.
  “지금 몇 시지?”
돌고래는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하고 내게 말했다. “오후 다섯 시.”
나는 간밤의 전화가 참치의 전화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내 앞에 놓인 카페도 당연히 참치가 ‘그럼’, 이라고 말한 그 카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참치 통조림의 뚜껑을 열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는 분명 나의 의지 혹은 선택과 관련된 문제였다. 하지만 밤 열한 시 십칠 분에 걸려 온 참치의 전화를 받고, 다섯 시의 카페를 마주하게 된 이상 카페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사실은 나의 선택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나도 알고 있어. 여기서부턴 네 문제라는 걸.”
  “그래.” 하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카페로 걸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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