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 bar.


total : 251, page : 7 / 8, connect : 0 login  join
      view article 2007/02/14  
         name          이대
subject 참치를 둘러싼 이야기 - 上


참치를 둘러싼 이야기 - 上






‘네 글은’ 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문장을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내가 글이라는 이름으로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하며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행복이란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 친구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런 문장을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한 것은, 나에게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



그저,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었다. 이전의 홈페이지를 가득 채웠던 스쳐 지나가는 감정들이 아닌, 내 안에 고이고 고여 가득 차는 그런 느낌과 감정들을 담아, 그저 기록하고 싶었다. 하루하루의, 나를 들뜨게 하고 우울하게 하고 부풀게 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그런 순간의 감정들을 흘려 보내고, 내 안에 오랫동안 남아 나를 구성하게 된 것들을 담아내기로 했다. 하루하루의 감정들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그 순간의 감정들에 의미를 부여하여 구체화시키는 행위가 결국 나를 점점 고갈시켜 갈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그런 글이란, 쓰면 쓸수록 나를 상처 입히기만 하는 것이었다. 나뿐 아니라 그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을 상처 입히는 그런 글이었다. 모든 사람을 상처 입히고 결코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글, 나는 더 이상 그런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상처 입히지 않는, 차갑지만 잔잔한 감정이 조용히 흐르는 그런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맨 처음, 그런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내 안에는 언제나 글 전개에 대한 부담감이 뚜렷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항상 다음, 다음, 다음 하는 전개에 대한 부담감에 지레 겁먹고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하고 포기하곤 했던 것이다. 결국 글이란 한 문장 한 문장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 부담감이란 스무 살이 넘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나에게 하루키는 말했다. ‘모든 이야기는 전부 제 나름의 끝을 가지고 있다.’ 그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 말을 통해, 부담감을 접고 ‘일단 쓸’ 수 있었다. 전개라든가 결말 따위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한 문장에 다음 문장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을 이어나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한 문장 한 문장을 써 나가는 동안 글은 제 스스로, 나름의 결말을 향해 천천히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나는 행운이라든지 어쩌다 한 번 같은 것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것들을 싫어한다. 맨 첫 글을 완성시켰을 때, 나는 일단 그것을 의심하기로 했다. 내가 과연 이것을 ‘내 글’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운 좋게 어쩌다 이루어진 글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그 의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계속해 쓰는 방법 밖엔 없었다. 계속해서 쓸 수 없다면, ‘내 글’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이를테면, 찍은 답이 많이 맞은 수학 모의고사 답안지, 운 좋게 성공한 체육 수행평가 연습과도 같은 것이었다. 결코 다음에도 같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나를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계속해 써 나가기 시작했다.
별 대단할 것도 없는 그런 글들을 열 몇 개 완성해냈을 때, 나는 내 글에 대한 의심을 버릴 수 있었고 계속해서 그런 ‘내 글’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확신을 갖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릴 수 있었다.



예전의 홈페이지에 하루하루 쓸 때에는, 돌고래를 닮고 싶었다. 돌고래의 그 감각들과 글맵시, 글투, 그리고 엄청나게 써 내는 그 양까지 수많은 부분에서 돌고래를 닮고자 했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건 결코 내 페이스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내용적인 면이든, 속도적인 면이든)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가 있는 법이다. 하루에 서너 개의 게시물을 꾸준히 올리는 것, 그것은 말하자면 돌고래에게 맞는 페이스였을 뿐이었다.
두 번째 홈페이지에서 나는 내 페이스대로 글을 쓰기로 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업로드에 대한 강박 따위는 던져버렸다. 그저 하루하루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하며 살다 보면 ‘쓰고 싶다’ 하는 느낌이 오는 때가 있다. 그럼 그 날 쓰면 되는 것이었다. 쓰고 싶다, 는 그 느낌이 오는 저녁이면, 일단 모니터를 마주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피쉬만즈의 음악을 재생시키고 그렇게 피쉬만즈를 글쓰기의 BGM으로 삼아 나는 저녁 여덟 시부터 새벽 한 시 즈음까지 썼다.

한참을 키보드를 두들기며 문장을 이어나가다 어떤 문장으로 다음을 이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을 땐, 생각을 멈추고 그저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귀를 기울이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를 흥얼거리며 따라 하다 보면, 생각의 물줄기는 이어지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밤을 채우는 피쉬만즈의 멜로디 속에서 한 문장 한 문장을 이어가며 나는 내 글을 한 개씩 완성해 나갔다.


          
사실 한 문장에 다른 문장을 잇는 일은 한없이 간단한 일이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다 보니 또 잘 되지 않을 때에는 한없이 잘 되지 않곤 하는 것이다. 그 날도 그런 날들 가운데 하루였다.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멍하니 앉아 그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받아들였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앞 문장에 이어질 다음 문장은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크게 쉬고 일어나, 한밤의 검은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문장이란 그런 곳에서도 쉽사리 찾아오지 않는 법이었다. 나는 결국 오늘은 그만 쓰기로 했다. 사실 계속해서 쓰든 쓰지 않든, 내가 쓰는 글이란 그런 것들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냈다.

한 모금의 맥주를 목으로 넘기며, 안주 삼을만한 것이 있는지 부엌을 뒤져 보았다. 부엌에 있는 것이라고는 참치 통조림 한개 뿐이었다. 그것 말고는 쓸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참치 통조림이 과연 맥주 안주로 어울리는 것인지 나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참치 통조림이 맥주와 잘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그것 역시ㅡ내 글과 마찬가지로ㅡ별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 마침 나는 배가 고프기도 했기 때문에 참치 통조림을 안주 삼아 먹기로 했다.
나는 참치 통조림과 포크 한 개를 가지고 돌아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스피커에서는 계속해 피쉬만즈가 이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어지는 문장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아도 스피커에서 피쉬만즈가 계속해 이어져 나오는 한, 나는 계속 쓸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여지와도 같은 것이다.
또 한 모금의 맥주를 넘기며 나는 참치 통조림의 뚜껑을 열었다. 딸깍, 하는 소리를 내며 뚜껑이 열렸을 때 나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창 밖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둠의 한 귀퉁이가 모호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은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구체적인 형태로 내 앞에 펼쳐졌다.



참치 통조림에는 언제인가부터 당연하다는 듯, 참치 부스러기들이 조금씩 통조림의 윗부분에 들어 있었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의 참치 통조림은 분명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뚜껑을 열었을 때, 분명 결이 고운 살코기만이 가득했던 참치 통조림은, 그렇게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달라져 있던 것이다.
나는 참치 통조림이 어째서 그렇게 달라져야만 했던 것인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J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흐른 후에 J가 전화를 받았다.
  “이봐,”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에 참치 통조림을 먹어 본 적 있어?”
  “참치 통조림?” J는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한동안 먹어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그렇군.”
  “그래. 그런데 갑자기 왜 참치 통조림을 물어보는 거지?” 작은 하품과 함께 J가 나에게 물었다.
  “음, 글쎄. 그냥 설명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아.”
  “기다려봐. 어딘가 남은 참치 통조림이 있는 것도 같으니.”

나는 맥주를 홀짝이며 J를 기다렸다. 한 곡의 노래가 3분의 2가량 지났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전화기에서 J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 왔다.
  “역시 한 개 남아 있었군. 그럼 이제 말해봐.”
나는 맥주를 책상에 내려놓고 오른손 엄지 손가락으로 입가를 훔쳤다.
  “뚜껑을 열어 봐 주겠어?”
미약한 ‘딸깍’소리와 함께 수화기 너머의 어둠 가운데에서 한 개의 어둠이 사라지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어째서일까?”
  “뭐가 어째서냐는 거지?”
  “어째서 참치 통조림의 윗부분에는 그렇게 부스러기가 들어 있게 된 것일까, 대체 언제서부터?”
J가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 분명 아주 오래 전엔 부스러기 따윈 없었던 것 같은데.”
분명 J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예전의 참치 통조림을. 그 확실하고 절제되어 있었던 참치 통조림의 모습을.
무언가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변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한 개의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같이 쉽사리 알아챌 수는 없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변화였다.

  “혹시,” J가 말을 이었다. “참치 통조림을 만드는 공장에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참치 저장 창고를 옮긴다든가 해서 남아 있는 것들을 처리하는 거지. 그 과정에서 예전이었으면 뒤쳐졌을 참치 부스러기들이 통조림에 들어가게 된 거고.”
일리 있는 말이기는 했지만 나는 J의 말을 부정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건 아닐 거야. 그런 이유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오래되었거든, 생각해 보면. 그리고 공장이 한 두 곳도 아닐 텐데 그 동안 먹어 왔던 모든 참치 통조림이 이렇게 달라졌다는 건 이해할 수 없어.”
  “하긴 그렇겠군.”
나는 J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작게 아쉬워했다.
  “그래. 늦은 시간인데 어쨌든 고마워.”
  “나중에 혹시나 이유를 알게 되면 나에게도 알려 달라구.”
J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J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혼자서 생각해 보았다. 맥주 한 병이 거의 다 비워져 갔지만 도통 알 수가 없는 문제였다. 마지막 한 모금의 맥주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 주위에는 굉장히 위험한 공기가 떠돌고 있었다. 벨소리마저도 굉장히 불안한 음색을 지니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시계를 올려다 보았다. 밤 열한 시 십칠 분. 그렇게 시간을 확인하고 나자 불안감이 조금 사라졌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시오? 참치라오.”

전화를 건 것은 참치였다.







prev

둘째삼촌과 보낸 시간들

이대  

back

참치를 둘러싼 이야기 - 中

이대  

list reply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Neotune.net